라벤더 키우기
잉글리시 라벤더를 키우고 있다. 사실 '보고 있다'라고 고쳐 써야 할 수도 있다. 돌보아 기르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라벤더는 금방이라도 작별인사를 할 것 같이 늘 위태롭고, 안쓰럽다. 라벤더를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이었다. 햇살이 따스함을 넘어서 따가운 지점에 막 골인하고 있었다. 라벤더를 만나기 전에 나의 세계에는 라벤더면 라벤더지 그렇게 많은 종류가 있는지도 몰랐다. 잉글리시, 피나타, 프로방스, 마리노라 각기 모양도 쓰임새도 다르다고 하는데, 과연 내가 라벤더를 아는 것은 맞는지 확신이 사라질 지경이었다. 잉글리시 라벤더는 기다란 꽃 대위에 자잘한 꽃들이 줄지어 맺히는 모양새로 에센셜 오일을 만드는데 쓰이곤 한다. 프렌치 라벤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석 라벤더로 기다란 보라색 꽃잎 모양이 특징이며 향료로도 많이 쓰인다고 한다. 사실 내가 처음 받은 라벤더는 어떤 라벤더인지는 모른다.
잉글리시 라벤더는 두 번째 라벤더이다. 무언가를 기르고 싶다고 마음을 먹어도 기르는 것보다 죽을 것이 먼저 염려되어 쉽게 식물을 사들이지 않았는데, 어느 날 회사에서 청렴한 기업문화를 만들어 보자며 화분을 나누어 준 것이 계기였다. 화분을 기르는 것과 청렴한 것이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막상 화분을 받아 들고 자리로 돌아오니 업무 내내 신경이 쓰였다. 아직 새싹이 움트 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리고 물을 준지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작지만 확실한 새싹이 모습을 드러냈다. 틔워낸 새싹이 새끼손톱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훨씬 작은데도 가슴에 집채만 한 파동이 쿵쿵 울렸다. 어릴 적 보던 과학프로에서 말하는 생명의 신비를 목격한 것처럼 신선했다. 어떠한 생명을 책임지라는 임무를 받은 채로 지구에 불시착한 우주인이 된 것 같았다. 마음이 우주만큼 넓고 광활하게 커져만 갔다.
그런데 그 벤지가(라벤더의 이름) 새싹이 잘 자라는가 싶더니 2주 만에 메말라 버렸다. 가파른 성장 속도가 무색할 만큼 폭삭 메말라버린 화분을 보면서 차라리 이름을 짓지 말걸 하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이름을 붙여 준 순간 의미를 갖는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이름을 붙이고, 이름을 부르며, 매일 같이 물을 주고 미래를 상상했다. 보라색 꽃이 소담스럽게 피어나면 그 위를 손가락으로 살살 쓸 면서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를 누리려 했다. 앞서 나간 기대에 부풀었던 마음도 같이 쪼그라들었다.
그리하여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생명의 신비를 목격한 이상 임무를 여기서 멈출 순 없다고. 아주 오랜만에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지금 유일한 목표는 살아남기인 사람처럼 비장하게 로켓 배송으로 씨앗을 주문했다. 가장 빠르게 배송이 가능한 라벤더 씨앗이 잉글리시 라벤더였다. 이것이 광활한 우주에서 잉글리시 라벤더와 내가 만나게 된 사연이다. 두 번째 라벤더도 벤지로 불렀다. 마음대로 씨앗에도 영혼이 있겠다고 생각하여 벤지의 몫을 이어받아 잘 자라 달라는 부탁이었다.
아마 첫 번째 라벤더는 잉글리시 라벤더가 아닐 확률이 높다. 확신할 순 없지만 성장 속도가 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싹을 선물했던 전과 달리 애를 태웠다. 기왕 심기로 마음먹은 거 영양분이 많은 흙도 같이 주문하고 영양제도 뿌렸는데 소식이 없자 얼마나 지났다고 조급증이 일었다. 인내심을 얼마나 더 길러야 할지 가늠할 때 즈음 싹이 아주 작게 솟아났다. 뭔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시작만 느렸을 뿐이지 녀석들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라벤더가 번식력이 이렇게 좋았구나 감탄하며 신나게 물을 주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내심 무언가를 키워내는 스스로의 모습을 의젓하다고 여긴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나의 모습을 전국의 식집사 들이 보았다면 참으로 방정맞지 않았을까. 며칠이 지나자 수많은 라벤더 줄기가 점점 시들어 가기 시작했다. 100개의 씨앗을 뿌리면 거의 95개의 씨앗이 발아한 수준으로 새싹이 즐겁게 연주할 때는 언제고 쉼표를 그리기라도 한 듯 점차 고요해졌다. 줄기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게 될 정도만 남게 되고 나서야 질문했다. 잘 알고 키웠었니?
최근 몇 달 동안 심리상담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생각보다 과거의 이야기를 많이 묻는다는 것이다. 현재 내가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는데(물론 현재의 고민을 이야기 못하게 막지는 않는다) 현재의 나보다 과거의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다. 초반엔 그게 싫어서 상담 자체가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다. 힘들었던 이야기는 물론 언제 꺼내도 할 이야기가 많다. 술안주에 가장 많이 오르는 이야기가 과거의 힘들었던 사연이 아니던가. 나도 한창 과도기에는 힘든 마음을 술안주든 푸념이든 올리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엄마가 그랬듯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이젠 말하기도 입 아파서 그대로 두고 문을 닫아놓았다. 그런데 자꾸만 그것을 다시 열라고 문을 끽끽 긁는 것이 아닌가. 긁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미칠 지경이었다. 문을 열면 다시 닫을 수 없을까 두려워 미치겠는데 겁도 없이 자꾸 벌컥 열어대려고 해서 마스크에 감사한 적도 있었다. 아아 감사한 거리두기여. 여과 없는 제 표정을 들키지 않게 해 주시네요.
환자랑 의사랑 싸우면 누가 이기겠는가? 환자가 약자라 서가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는 쪽이 상대방이기에 환자는 따라야만 한다. 억울하면 내가 저기 건너편에 앉아있었어야지. 깔끔하게 인정하고 문을 다시 열었다. 그러자 미처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과거를 바로 잡아야 현재의 내가 바로 설 수 있다는 간단한 사실이었다. 무엇 때문에 과거가 망가졌는지를 알아내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내가 과오를 범할 확률을 줄여준다. 마치 라벤더 키우기와 같다. 첫 번째 라벤더를 실패했을 때 알았어야만 했다. 라벤더가 과습에 약하다는 사실을. 물을 거의 주지 않아도 오히려 잘 살아남는다는 것을.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한 채로 매일 같이 잘 자라라고 주문같이 좋은 말을 속삭였다고, 누구보다 친절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엄마는 늘 입버릇처럼 자신의 행동은 다 내가 잘 되기 위한 행동임을 알렸다. 지금 당장 내가 괴로 워도 미래의 내가 결국 감사하게 될 결말이라는 걸 형광펜처럼 강조했다. 엄마는 자신 있게 밑줄을 그어놓는데, 정작 그 밑줄이 나를 덮치는 장막 같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컬러풀한 색감이 아니라 거무죽죽 빗금 같이 두껍고도 두꺼운 아주 새까만 줄이었다. 그 줄에 깔려 있는 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실내에서 라벤더를 화분에 키우기란 거의 불가능하단 사실을 한 가닥의 줄기만 남았을 때 알게 되었다. 라벤더는 본디 노지에서 키우는 것이 제일 좋고, 실내에서 키워야 한다면 과습에 매우 유의해야 하며, 물이 거의 없고 햇빛이 잘 드는 흙에서 키우는 것이 좋다.
절망스러웠다. 어처구니없이 키워 온것이 정말이지 너무너무 창피했다.
누구나 그렇게 키우니까. 대부분의 식물은 그런 걸 좋아하니까. 물은 흙이 마를 만하면 바로 주고, 적당하게 햇빛에 두면 알아서 잘 자라니까. 문득 엄마가 그렇게 키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은 다 주었는데도 왜 똑바로 자라지 못하고 자꾸 비틀거릴까. 그 속에서 난 과습 되어 말라가는 라벤더처럼 촉촉한데도 자꾸만 숨이 막혀 헐떡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마른땅이 훨씬 낫다는 것을 우리 엄마에게도 누가 알려줬더라면, 되도록이면 그걸 알려주는 것이 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나 좋았을까. 같이 열린 결말의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충 뭉개는 위로 같아서 입안이 껄끄럽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그런 표현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는 일들이 참으로 많았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열린 결말을 최고의 결말로 두어야 할 때가 넘쳐난다. 그래도 아직 한 줄기의 라벤더가 남아있고 상담은 계속되고 있다. 최대한 과습에 유의하며 라벤더를 키워볼 작정이다. 꽃냄새를 맡는 건 상상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 먼 미래까지 나아가다 보면 현재를 돌볼 힘이 현저히 줄어든다. 최대한 현재에 집중하며,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라벤더 성장 후기를 읽고 정보를 수집한다. 두 번째 벤지는 더 나은 벤지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1차 목표는 줄기가 단단해지는 것이다. 그 단계의 초입 부만 가도 생존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으니 그때까지는 숨결을 늘 신경 써야지. 그리고 단단해지면 상담 선생님께도 이 멋진 생존일기를 들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