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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Oct 30. 2022

늘 반복되는 것

정신질환은 사라지지 않아요



가슴이 자꾸 답답하고 쥐어짜는 것 같이 아픈 증상이 생겼다. 어느 때처럼 퇴근을 하는 데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히면서 눈물이 났다. 요즘 눈물을 흘릴 만큼 힘든 무언가 있었나. 굳이 따지자면 그날 퇴근 시간을 넘긴 시각에 회사 밖을 나선 게 불만이 되려나 싶었다. 하지만 이미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때라 고작 2시간 늦은 8시에 퇴근한다고 눈물지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불쌍하게도 일찍 퇴근했다고 좋아했으면 좋아했지.


원래가 병원을 잘 가지 않는다. 어릴 때 천식을 굉장히 심하게 앓았는데, 호흡기까지 들고 다닐 정도라 약을 항상 달고 살았기 때문에 병원에 너무 질려버린 탓이다. 다행히 커서는 감기로 고생할 일이 거의 없었지만, 웬만한 일로는 병원을 찾기를 꺼려 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민간요법을 맹신하지 않고 병원을 찾아간다는 것은 사태가 꽤나 심각하다는 뜻이다.


자꾸만 가슴 한가운데 가 묵직하다고 말하자 위내시경 검사를 권유하여 예약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검사를 기다리는데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는 것이 아닌가. 알 수 없는 구토 감에 이유 모를 헛 구역질을 남발하거나, 가슴이 꽉 막혀 체한 것 같은 느낌이 지속되었다. 결국엔 답답함을 달래려 목적지 없이 한참을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들이 이어졌다.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는 날 분명 무슨 일이 있을 거라 예상했건만, 지극히 정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 그동안의 증상은 모두 무엇이냐 물었더니, 혹시 야근이 잦거나 수면 시간이 불규칙 한지를 묻더니 스트레스 때문이겠죠.라며 심드렁하게 답하는 의사의 말을 들으며 그저 그런 줄로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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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의 근원지였던 회사에 퇴사 통보를 하고 이제는 일상을 괴롭히던 모든 증상에서 자유로워질 것을 한껏 기대했다. 더 이상 밝아오는 아침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자정 넘어 택시를 타고 서울에서 안산까지 할증이 붙은 무시무시한 요금을 지불한 뒤, 집에 돌아와 쪽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 몸과 마음이 얼마나 건강해질까.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가슴이 뛰는 일이 잦아졌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도저히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 앉아있지 못하고 주방과 거실을 가로질러 서성거렸다. 여전히 쉽게 잠에 들지 못하고 새벽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스트레스의 근원이 사라졌는데도 괴로운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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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단체로 심리 검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질문지에는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생각한 적이 있다면 보통이다/종종 그렇다/매우 그렇다. 대략 이런 식의 무거운 질문들이 있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한다고 생각했다. 검사에 거짓을 고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러한 생각이 잦았던 나는 솔직하게 '종종 그렇다'에 체크를 했다.


자습이 한창이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나를 호출했다. 뒷문으로 은밀하게 나오라고 손짓하는 모양새가 무언가 좋지 않은 부름 같다는 예감이 스쳤다. 늘 자신 없던 수학 점수가 또 떨어진 건 아닐까 걱정하며 복도에 나갔을 때, 선생님은 뜻밖의 이야기를 건넸다. 얼마 전에 했던 심리 검사 기억하지? 결과 상으로 우울 증세가 높게 나왔다고 하더라. 그래서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


어안이 벙벙했다. 어쩐지 잘못한듯한 기분이 들었다. 순간 정답이 아닌 오답을 적어낸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스쳤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무사통과했는데 혼자만 낙제를 한 기분. 선생님은 손바닥을 펼쳐보라고 말한 뒤 손에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셨다. 도움이 필요하면 꼭 여기로 메일을 보내라면서. 그리고 집에 가서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자 크게 화를 내셨다. 도대체 어떤 질문에 어떻게 답을 했길래 그런 말을 듣고 온 건지 따지듯 물었다. 결국 울면서 손바닥의 메일을 비누 칠하여 지워버렸다. 그렇게 첫 번째 경고는 소리 소문 없이 지우개로 밀린 것처럼 말끔하게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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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스스로 의심했던 부분이 다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때가 됐을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지난날에 오답을 적어낸 것이 아닐 거라는 확신.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그 답들이 말하는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그때에 내가 메일을 보냈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이미 지나간 이야기라 치부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 같았다. 그러나 뭐가 그렇게 자신이 없는지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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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을 미워했다가 또다시 사랑하게 될 것이다. 때로는 자랑스러웠다가, 때로는 너무 싫어서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스스로를 사랑스럽게 여겨줄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오래도록 발버둥을 쳤다. 유치원 때 수영장 밑바닥에 가라앉아 물을 잔뜩 먹고 기절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물에 빠지는 것이 두려워서 물 안에 도통 들어 가질 못한다. 어쩌다 들어가게 되면 아마 발로 개 헤엄을 치며 빠지지 않으려 바둥바둥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그저 제자리에서 맴돌 것이다. 그 수영장의 헤엄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기분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해도 나아 가질 않는다. 수영을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 그저 빠지지 않는 것에만 항상 안주하며 살아왔다.


아마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손바닥의 이메일을 옮겨 적지 않은 것은 오답을 적어 서가 아니다. 오히려 인정하기 싫었기에 지워냈을 것이다. 나는 우울증이 아닐 거야. 아니어야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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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지 못한 마음과 타이밍을 놓친 말들 그리고 제때 알아야 할 일들. 모든 게 조금씩 어긋나면서 맞지 않는 퍼즐의 모양처럼 인생을 그르치고 있었다.


'엄마, 내가 자꾸만 사라지는 것 같아. 그런데 이유를 모르겠어. 속이 점점 뭉개지는데, 사람들에겐 자꾸 거짓말로 밝은 척을 해. 어제는 동기 집들이를 갔잖아? 가면서 버스에서 내내 손이 떨렸어. 나도 모르게 몸이 땀으로 젖는 거야. 갑자기 친구들을 볼 용기가 안 나는 거야. 너무 웃기게도 친구를 보러 가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어. 너무 무서운데 엄마에게도 이야기 못하겠더라. 약해 빠진 소리라고 욕할 것만 같아서. 어릴 적 지워버린 이메일 주소처럼 이런 모습은 늘 지워내야만 할 것 같아. 그래도 한편으로는 괜찮아지고 싶어. 병원에 가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일까?'


결국 엄마가 살아있을 때는 치료를 받지 못했다. 엄마와 함께하고 싶었다. 불행해도 같이 불행하다가 또다시 행복해지고 싶었는데, 인생은 늘 원하는 것을 쉽게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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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방황 끝에 시에서 운영하는 정신 건강 센터를 먼저 찾게 되었고, 다행히 센터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적극적으로 병원을 연계해 주셨다. 우울 증세가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상태이니 한시라도 빠른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를 병행할 것을 권했다. 덕분에 용기 내어 정신과로 한걸음 내딛게 되었다.


정신과에서 가슴이 막히고 땀이 나는 증상은 공황 발작이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미디어로 공황 장애를 접했기에 훨씬 익숙하게 병을 인지할 수 있었다. 이유를 모른 채 내과를 전전하던 시간들이 아쉬웠다.


가슴이 막히는 증상들은 몸이 내게 보내는 두 번째 경고였던 셈이다. 이렇게 홀가분한 것을 좀 더 일찍 올걸. 생각보다 정신과는 이상하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선생님은 공황 발작은 무의식이 위험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작동하다 보니 부 교감 신경이 깨져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황 발작은 길어야 10분 안에 끝난다며 절대 죽지도 않고, 남들에게 미쳐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을 유념하라며 당부하시기도 했다. 또 우울증은 도망간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꾸준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늘 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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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동물들은 적이 나타나면 도망가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럴 수가 없다. 도망가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없다. 태어났으니 쉽게 죽지 말라는 구태의연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은 늘 반복되기 때문이다. 우울증도 하나의 습관처럼 삶의 구석구석 배열되어 있다가 때를 맞춰 등장하곤 한다.


그리하여 무작정 살아내야 한다는 강박감보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두려움의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과거의 기억, 여러 감정들, 스트레스 등 당장 내가 죽일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그리고 그것들의 공격을 빈번하게 받는 현대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도망치는 것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정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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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적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죽이며 살 만큼 삭막한 야생의 세계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 비비며 살아가는 세계니까. 이러면 죽이지 말아야 할 대상에 스스로를 포함 시킬 수 있다. 야생 동물 보호! 와 같이 이 세계에 던져진 마음이 아픈 스스로를 보호하자.


반드시 아픔을 정복하려고 하지 않는다. 죽이거나 맞서지 못할 바에는 사나운 아픔이 지나가기를 잠시 기다리며 숨는다. 이 시간은 또 반복되다가 사라질 순간들이다. 다만, 이제는 마냥 혼자 숨는 것이 아니라 약의 도움을 받으며 조금 더 편히 숨는 것 이것이 아주 중요하다.


스스로를 정상으로 의심하다가 우울증이라고 인정했다가. 사랑했다가 미워했다가. 불행하면서 행복하다가, 행복했다가 또 불행했다가 그렇게 반복되는 것들이 주기를 갖고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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