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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Oct 30. 2022

왜 정신과에 가게되었나요?

치료를 받는 이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생긴 나에게 가장 큰 고역은 왜 정신과에 다니게 되었냐는 질문이다. 정신과를 다니기 전에는 병원에 도달하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라 생각했다. 섣불리 문을 두드려서는 안될 것만 같은 곳. 혹은 일생에 가보지 않을거라고 판단했던 곳. 그런곳이 정신과였다.



사람은 태어나서 자신이 가본 곳 만큼 알게되고, 알게 된 만큼 자신의 우주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가보지 않은 곳은 영영 알지도 못하는 곳이 된다는 뜻이다. 누구나 몇몇 공간은 미지의 공간으로 남게 된다. 모든 공간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어쩐지 아쉬울 수도 있겠으나, 어떠한 공간은 모르는게 약인 곳이 있다.



응급실, 중환자실 같은 생사를 다투는 공간은 모를 수록 약인 공간이다. 나 역시 일생에 가보지 않을거라 판단했던 곳에 정신과를 포함하여 저 두곳도 포함이 된다. 하지만, 엄마가 아프면서 응급실은 동네 병원처럼 자주가게 되었고, 중환자실에서 엄마와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렇듯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인생에 정신과가 대수랴. 나의 우주는 멋대로 확장할 준비를 마쳤다. 따라서, 낫기만 한다면야 용기를 내서 까짓것 가면 그만이다. 심지어 내가 돈을 지불하여 가는 곳이다. 돈을 받는 일이라면 내가 무언갈 잘 해내야 하겠지만, 돈을 내고 진단받기를 기다리면 되는 곳이다. 그런데도 왜 아직까지 정신과의 문턱은 높은걸까?



정신과의 특성을 한번 살펴 볼 필요가있다. 정신과도 어쨌든 병원에 속한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병원진료는 어떤것이 있을까. 내과, 외과, 정형외과, 치과, 비뇨기과, 피부과 등. 이것들과 정신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치료한다는 것이다. 청진기를 대거나, 입을 벌리거나, 살의 표피를 긁어내거나, 내시경을 하거나 어떠한 기구를 사용하여 우리를 탐색할 수 없다.



환자의 내면에 일어나는 일들을 파헤쳐서 탐색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우리는 글자 그대로 진단받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스스로 이야기를 시작해야만 진단 받을 수 있다. (가만히)기다릴 수 없다는 점에서 정신과는 특별하다. 내밀한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낼 준비가 되어야 비로소 치료의 첫걸음을 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다수의 환자들은 가장 흔한 고민을 한다. 내가 정말 병원에 갈만한 정도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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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빠의 그간의 행동이 퍼즐처럼 머릿속에 끼워맞춰지는 것 같았다. 여자가 암이면 남편들은 나몰라라 한다. 그로인해 병세가 더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라는 내용이 실려있던 신문기사가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엄마의 투병기간 중 서로가 유난히 예민해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빠를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고, 아빠는 엄마가 아파서 예민해진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저 마음이 떠났을 뿐이었다. 엄마가 떠나고 아빠가 혼자서 호호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살아가길 바란게 절대 아닌데, 언젠가 생길 사람 좀 더 일찍 생긴거라고 여겨보기엔 역겨웠다. 그 감정들이 역겨워서 아빠를 떠올리면 구역질을 하는 신체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증상들도 스트레스가 심할 수밖에 없으니. 그래, 이쯤은 참고 살 수 있겠지 하고 넘겼다. 아직까지는 넘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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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 새로운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혼자서만 알아채고, 아빠는 내가 모르는 줄 알고 서로 같은 집에서 머리를 맞대면서도 사실을 숨긴채 지내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좋아하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해. 안 그러면 정말 병이 돼.' 내 속에 숨겨둔 말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병이 들고 있었다. 당연히 넘길 수 있다고 밥과 함께 말들을 꾸역꾸역 매끼니 넘기면서 매일 병들어가고 있었다.



숨쉬기가 곤란해서 가슴을 부여잡는 나날들에도 그저 스트레스가 쌓여서 홧병이겠거니, 자주 악몽에 시달리더라도 그저 꿈자리가 뒤숭숭하다고. 스스로를 설득시킬 이유들은 늘 준비된 술래처럼 숨어있다 나를 낚아챘다. 걱정하지 말라고 넌 그냥 참고 넘어갈 수 있다고 여겼다.



물이 넘칠까 세워둔 둑은 물살이 강력해지면 안정적인 수위를 지키지 못한다. 감정이 범람하는 날에 안정적인 이성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숨겨둔 말이 강력한 물살처럼 튀어나온다.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이었고, 많이 화가 났음을 인정한다. 다시 돌아갔으면 침착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하고 되뇌어본적도 많다. 그러나 쓸데없는 생각임을 알았다. 첫째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며. 둘째로, 정제해서 이야기하기란 결국 불가능할 것이다.



아빠, 아빠가 사람이야? 새로운 여자를 엄마 아플 때 만나는게 말이 돼? 소설이라고? 핸드폰 보고 다 확인했어. 솔직히 나 어릴 때도 바람폈던거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나는 아빠를 다 잊고 좋아하려 노력했어. 심지어 좋아했어 어느순간엔 엄마보다도 더. 그런 나에게 이렇게 배신하면 안 되는 거잖아. 아빠 이기적인 사람인거 알아. 나도 아빠 닮아서 늘 나 뿐이지. 그러니 언젠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거라 생각했어, 나도 든든했을 거야. 그렇지만 이런 식은 아니야. 엄마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네 엄마를 닮은 게 참 똑같아. 소설쓰고 혼자 상상하고 사람 몰아가는 듯이 대하지마.



이런식으로 그동안 엄마에게 대했던거야? 한번도 사과하지 않은 채 늘 소설쓴다면서? 엄마가 얼마나 맘고생했을까. 아빠는 진짜 사람도 아냐. 아빠에게 태어난 내가 싫어. 할 수만 있다면 내 몸에 피를 다 뽑아버리고 싶어! 너무 창피해서 미칠것 같아. 정말 창피해서 미칠것 같다고.



무슨 말을 그런식으로 해? 아무리 화가나도 미쳤어 아빠한테? 그리고 말이야 너 왜 이제와서 착한 척을 하니? 솔직히 살아 있을 때 엄마에게 못한건 너야. 네가 엄마를 죽였잖아.



네가 엄마를 죽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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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외도로 나는 일평생 엄마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저렇게 사랑받으려고 애쓰는데 그 사랑을 돌려받지 못하는 엄마가 너무나도 가여웠다. 그래서 더 엄마에게 잘하고 싶었다. 분명 그랬는데, 엄마는 내 사랑으론 충족하지 못했다. 내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닌데, 그저 사랑의 형태가 달랐을 뿐인데 어린 나는 그걸 알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삐뚤어지고 말았다. 내 사랑은 받기 싫다는거냐고 소리쳐 따져묻지는 못하고 그저 엇나갔다. 지난날의 과오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나는 죄책감에 잠식되었다.



아빠를 향한 배신감, 엄마에 대한 죄책감. 여러 감정이 뒤섞인 나는 병들어 있는게 당연한, 치료 받는게 마땅한 존재였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그저 넘기고 있었다. 오히려 지난 과거를 자꾸만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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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맞으면서 얼굴을 들기가 힘들었다. 친척 어른들, 친구들 모두가 나에게 고생했다며 위로의 말을 건낼 때 너무나도 창피했다. 나 때문에 엄마가 죽었는데 이자리에 지금 있어도 될까. 엄마의 병간호를 마지막까지 같이 한 사람이 나라는 사실도 후회로 남았다. 내가 아닌 동생이 옆에서 같이 있어줬다면 엄마가 더 오래 살 수 있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무나도 이기적인 사람이다. 병간호를 하다가 집에와 밀린 빨래를 할 때도 순전히 내 생각 뿐이었다. 엄마는 항암치료니 표적치료니 방사선치료니 알 수 없는 치료들을 받을 때 쪼그려 앉아 속옷들을 손 빨래 하면서 복학준비는 할 수 없겠구나. 취직준비는 언제할까. 같은 생각들을 머리로 셈하였다.



아빠 말처럼 엄마는 내가 죽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나는 병원 문을 여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내가 감히 살아갈 자격이 있을까요. 겨우겨우 병원 문을 열던 날 나의 첫마디였다. 후에 선생님은 자격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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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강하게 먹어도 어려운 일이 존재한다. 엄마가 가장 자주하던 말은 '뭐든지 마음먹기에 달렸어' 였다. 원효대사 해골물 마시던 시절에는 정말 마음먹기에 달린 일들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사회에 마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도 있지 않을까? 너무나도 다양한 일들이 시시각각 일어날 수 있는 이 시대에.



정말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들. 어떤 일이냐면 그냥 삶을 깔아뭉개고 앉아버리고 싶은 일. 단순히 튀어나온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 다리가 부러져서 뼈가 산산조각 나는 것이 느껴지고 살은 찢길 때로 찢겨서 너덜너덜 해지고 피는 도무지 멈추질 않아서 철철 흐를 때. 아픈 건 둘째치고 어떻게 해야할지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 도와달라고 주변을 둘러봐도 마땅치 않고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걷기엔 너무 버거운. 더 이상 모든것을 노력하지 않고, 체념하고, 포기하고, 흘려보내면서 남은 여분의 삶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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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도록 그 마음으로 살았다. 때로는 갑갑함에 숨이 쉬어지지 않아도, 갑자기 심장이 미칠듯이 뛰면서 죽음을 느끼더라도, 밤에는 잠 대신 뜬눈과 한숨으로 천장의 무늬를 관찰하더라도.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에서 조인성이 트라우마에 대하여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막에 있는 낙타를 한낮에 나무 막대기를 세워놓고 줄로 다리를 묶는다. 그리고 밤에는 그 줄을 풀어준다. 하지만 낙타는 밤이 되어도 나무 막대기 근처를 떠나지 않는다. 땡볕에서 긴 시간 다리가 묶여있던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로워진 밤에도 떠날 수가 없다. 그것이 바로 트라우마다.



선생님은 나에게 내가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과 믿었던 가족이 네가 죽였다고 말했던 상황이 합쳐지면서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진짜로 내가 죽였다는 생각이 다리에 막대기처럼 묶여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사건은 아주 강력한 트라우마가 되어 내 곁을 맴돌고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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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가 물 없이 사막에서 최대로 견딜 수 있는 시간은 20일 정도라고 한다. 막대기에 묶인 낙타도 한 달에 한 번은 물을 저장해야만 한다. 자신에게 남은 여분의 시간을 아무리 뭉개버리려고 해도 괴로운 시간마저 껴안으면서 물을 저장하러 세상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한다. 심지어 남은 삶을 벌이라고 생각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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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먹으면서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 약을 먹지 않는 사람들도 어려운 일이다. 단 한 번에 완벽하게 사랑해주기 어려운 일이니까. 엄마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변하지 않아도 좋다. 아빠에게 받은 상처가 자꾸만 발목을 잡아도 상관없다. 기억을 지우지 않는 이상 그것들은 때때로 나를 놀리듯 찾아올 것이다.



다만, 남은 생을 벌이라고 생각하는 것 대신에 떠나간 사람을 위해 남겨진 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몫은 열심히 살아남기. 라고 생각하는 이 마음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남겨진 모든 것을 대신하여 열심히 수행해보고 싶다. 떠난 사람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걷지 못하면 기어서라도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하여 기록할 것이다 오래오래. 이렇게 사적인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유는 우선, 이기적인 사람이기에 쓰면서 감정을 덜어내기 위함이다. 글을 쓰다 보면 아무래도 아무리 감정적인 사건일지라도 문장을 구성하며 감정들은 조금씩 휘발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과거의 사건정리를 하는데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건 조금 더 거창한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나와 같은 케이스가 있다면, 이렇게 피 철철 흘리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흔들리며 버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도움을 요청했으면 좋겠다. 처음엔 정신과 방문이 어려워 시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검진센터를 이용했다. 각 시에서 꽤 많은 수의 정신건강검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하여 무료로 상담 예약도 가능하니 꼭 도움을 받길 바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정신과는 감기약 타러가는 내과와 다를바가 없다는 것이다. 막상 가면 너무 예약이 많아 바글바글 발 디딜틈이 없다. 서두에 했던 고민처럼 내가 꼭 가야할 정도일까? 하며 너무 고민이 되겠지만, 고민이 되는 순간 한걸음 나아가 보길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생이 벌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아주 작은 이유라도 다 뒤져서 찾아보자. (나도 아직 찾는 중이니 같이 찾아 봐야할 것이다.) 삶의 이유는 어느 누구라도 찾기 힘들다. 옷을 사도 사도 올해도 또 입을게 없구만. 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암울해하기 보다는 옷장 속에 입을 만한 옷 한개를 찾는 심정으로 뒤져보는 것이다. 진짜로 입을 만한 옷을 찾아보아도 좋다. 찾았으면 마음을 먹고 나가는 것이다. 네모나고 길쭉한 침대 한 칸에만 벗어나도 소담스러운 꽃 봉오리가 작은 이유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단순하고도 명쾌할수록 좋다. 날이 좋으니까, 밥이 맛있으니까, 티브이가 재밌으니까, 오늘 잠을 실컷 잤으니까,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의 특권인 맥모닝을 먹었으니까, 하루에 세번 약을 챙겨먹었으니까.



사소한 것에 거창한 이유를 붙여서 나아가자. 그거면 됐다.



내가 들은 말 중 힘든 시기를 넘어갈 때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 한마디를 꼭 건네고 싶다. 언제나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살아있어서 수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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