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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May 22. 2023

나는 나를 이해하려고 태어났어




갑작스러운 전화였다. 친척 언니는 나와 12살터울이고 마지막으로 본 건 언니 결혼식 때였으니 6년만이려나 싶었다. 아니 정정한다. 마지막으로 본 것도 나만 신부인 언니를 하객 석 에서 바라본 것에 불과하니 우리가 서로 마주하고 대화를 한건 언니와 나의 나이 터울만큼 오래전 일일 것이다. 거의 10년도 넘게 우리는 보지 못했다. 그런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얼굴을 한번 보고 꼭 이야기하고 싶다고.


친척들과 원래도 가깝게 왕래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이렇게 연락을 끊다시피 할 정도로 안보는 사이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내 입장에선 당연했다. 첫째는,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외가 쪽으로는 전보다 발길이 뜸해질 수밖에 없었고, 둘째는, 엄마가 아플 때 아빠가 바람을 폈고, 결국에 집을 나가버린 상황이 너무나도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는, 이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친척어른들이 나를 가엾이 여기는 것이 너무 싫었다. 나는 이미 스스로가 너무 가엾고 천애고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물론 동생이 곁에 있지만) 남도 나를 가엾게 보는 것이 신물이 났다. 동정은 이미 자기 연민으로 충분했다.


사정이 있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오래전부터 잡은 선약이 있다든지, 그도 아니면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할 만큼 밥 벌어 먹고 살기가 바쁘다는 핑계정도야 얼마든지 지어낼 수 있었다. 즉, 내가 만남을 받아들일 이유보다 거절할 이유가 훨씬 많았고 거절이 승낙보다 복잡하지 않고 심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천안까지 직접 내려가겠다 말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강산이 바뀌고 만나는 사이가 아닌 마치 엊그제도 본 듯한 친구사의 약속과도 같이 나는 언니와의 만남을 승낙했다. 그리고는 후회했다. 후회할거면서 승낙하는 것은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으나 판단력이 흐려진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왜 승낙했을까 뒤돌아 생각해보니 얼굴 마주하고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했고, 계속 끈질기게 물어보는 언니를 거절하기 미안했고. 여러 이유들이 나왔으나 가장 솔직한 이유는 내가 연락이 닿은 유일한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제대로 된 어른이 부족했네요. 상담 때 이 말을 들은 이후로부터 제대로 된 어른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롤 모델로 삼을 사람을 아무리 찾아봐도 성에 차는 어른이 없었다. 나의 생활반경 역시 뻔했기 때문이다. 직장과 집. 너무 심플해서 심심한 일상은 단단한 안정감을 주지만 반대로 빠져나갈 틈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변화를 지양한다는 뜻이 된다. 변화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균열 없이 빽빽한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제대로 된 어른 찾기가 잘 실행될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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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이 조금 지난 성별도 모르는 아기를 위하여 옷을 사러 갔다. 그래도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데 빈손으로 털레털레 가긴 싫었다. 뭐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너무 과한 것은 또 부담이었고 적당한 선물을 찾다가 연락 말미에 애기를 낳은 지 얼마 안됐다던 언니의 말이 생각나서 아기 옷으로 마음먹은 것이다. 언니가 아이를 낳은 것은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확인했었다. 어느 날 아이 사진이 올라와있는 것을 보고 아이를 낳았구나 짐작했고, 100일 기념사진을 보고 100일이 갓 넘었겠거니 짐작했다.


성별쯤이야 언니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었다. 자주 연락은 못했어도 사진으로 소식 잘 보고 있었다며 너스레를 떨면서 안 그래도 궁금했다고 아들이냐 딸이냐 이름은 뭐냐. 살갑게. 그런데 멀어진 간격만큼 그럴 힘이 없었다. 그래서 아기 옷가게에 가서 ‘100일쯤이고 아들인지 딸인지는 몰라요. 중성적인 옷으로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라는 요상한 질문을 했다. 점원이 성별을 모르신 다구요? 하면서 열심히 찾아주시는 걸로 보아 이 지구 어딘가에 누군가가 또 성별을 모르면서 옷을 사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하며 잠시나마 위안을 삼았다.


적당한 옷을 사고 나오면서 내일 만남이 과연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상상을 했다. 옷을 사서 내려가는 이 과정이 제발 헛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여름치고는 쌀쌀한 밤바람을 맞았다.


천안아산역 11시 10분. 언니와의 만남 시간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카톡을 보냈다. 도착했는데 와계시는지. 10분이 지나도 읽지 않아서 통화를 걸었는데 불발이었다. 혹시나 하고 쎄한 느낌이 들었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너무 미안하다고 잠깐 앉아서 기다려달라는 전화였다. 15분이면 간다고. 아무래도 약속을 잊은듯한 목소리였다. 도착하자마자 기분이 팍 상하려는 것을 참고 기다렸다. 언니는 그래도 30분을 더 기다리니 도착했다. 도착시간이 아닌 출발시간으로 착각했다며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재회는 적당히 어색했고 적당히 불편했다. 언니는 직접 알아본 식당으로 데려갔다. 식당은 파스타, 스테이크, 연어덮밥 등 양식을 지향하는지 일식을 지향하는지 모르겠는 애매한 식당이었고 언니와 나는 서로 원하는 것을 묻다가 적당한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골랐다. 그리고 말을 하며 느꼈다. 언니가 얼굴을 보고 꼭 하고 싶다던 얘기는 애초에 없었음을. 본인의 육아에 대해서, 결혼에 대해서, 시댁에 대해서 못 다한 이야기를 쏟아내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언니는 이야기를 허겁지겁 쏟아냈다. 마치 이번에 아니면 못할 얘기라는 듯이.


한참을 말하다가 아 너무 내 얘기만 하나 너 이야기도 들어야 하는데. 라며 모히또 에이드를 한모금 마시고는 언니는 이내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 오랜만에 만나서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고, 잘 지냈냐고, 그때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 다는 소리 안했잖아. 뭘 기대했니. 스스로에게 자조하듯 타박하며 식어버린 파스타면만 돌돌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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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이제 집에 가고 싶었는데 언니는 카페에 가서 맛있는 디저트도 먹자며 바로 옆 가게로 이끌었다. 가게는 분수대가 넘실대고 있었으며 총 3층짜리에 루프탑도 있는 고급스러운 카페였다. 주문을 하러 계단을 내려가는데 언니가 출산 후 몸이 많이 상했는지 벽을 집고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서운한 감정은 뒤로하고 짠하다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래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으면 나를 불렀을까. 출산하면 생각이 많아진다는데 나는 언니를 이해해보려고 했다.


카페에 들어서서는 갑자기 언니가 결심이라도 한 듯 태도가 바뀌어서는 나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마치 토크쇼의 진행자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1부는 나 2부는 너야. 맡겨둔 사람처럼 진행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지나간 일을 다시 복기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또 강산이 바뀔 때 볼 사람이라 생각하고 솔직하고 가감 없이 말했다. 우울증이어서 약도 먹고 있고, 엄마가 돌아가신 와중에 아빠까지 새 여자가 생겨서 집을 나간게 힘들어서 정신과 상담도 받고 있고, 그 와중에 들어간 회사는 매일 야근에 상사가 기분파여서 안면마비에도 걸렸고..언니에 템포에 맞추다 보니 나도 허겁지겁 말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말을 하다보니 마치 래퍼가 된 듯한 느낌도 들었고 내 인생을 축약해 놓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참 별거 없구나. 라는 생각이 스칠 때 쯤 언니가 그런데 왜 약을 먹는 거야? 엄마는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됐잖아. 라는 질문을 했다. 내가 우울증이라는 말은 귓등으로 들었나? 순간 기분이 팍 나빠져서 우울증이라서 약을 먹어야 한 대요.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또 왜 네가 우울증인데?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또 가감 없이 말했다. 아빠가 바람을 핀 와중에 오히려 저보고 왜 이제 와서 착한 척 하냐면서 엄마는 네가 죽였다고 했어요. 저는 아빠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요) 괄호의 말을 결국 나는 해내지 못하고 울었다. 울 생각은 없었는데 아직도 아빠와 관련되면 찌질이 같이 눈물이 먼저 나는 내가 싫었다.


그리고 언니는 아 네가 아빠 때문에 힘들었구나. 너 고생했겠다.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겠어. 상담사가 아닌 어른 중 처음으로 힘들었구나 라는 말을 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왜? 왜? 질문 투성이던 언니가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얼굴이 심각해지더니 저런 말을 꺼낸 것이다.언니는 정말로 나를 이해하고 싶어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상처를 주거나 무례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서.


그 이후로는 대화가 편해졌다. 나도 좀 더 솔직하게 용기를 냈다. 원래 떨고 싶었던 너스레를 떨며 아들인지 딸인지를 물었고. 아들이라는 대답에 너무 귀엽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름은 아들하고 딱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언니는 아이를 낳으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행복했었나 싶을 정도로 행복하다고. 나는 아이가 없고 결혼계획이 없으니 평생 온전히 알 수 없는 감정이다. 그러나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언니가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을 하니 그 벅차는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헤어지는 시간이 되어서 형부가 차를 끌고 카페 앞으로 올거 라며 KTX 역까지 태워다 준다고 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한 차안에는 언니의 아기가 있었다. 뒷 자석에 앉아있는데 언니가 갑자기 아이를 넘겨주며 안아볼래? 하고 웃었다. 제가 아이를 안아도 되요? 묻자 언니가 그게 뭐 별일이냐는 듯 그냥 안아도 돼 하며 편하게 해. 라고 말했다. 아이를 안아들고 아이를 바라보며 웃자 아이가 따라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따라 웃는 모습이 어쩐지 뭉클했다. 언니의 행복이 더 이해가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손가락을 내밀면 손을 꽉 잡아준다는데. 순간 어디선가 본 말이 생각나서 자그마한 손에 검지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더니 작디작은 손들이 힘을 꽉 주고 내 검지손가락을 잡았다. 너도 열심히 살고 싶구나. 너도 행복해지고 싶구나. 나도야. 나도 열심히 살고 싶어.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언제가 너도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오면 말이야. 너의 웃음을 나도 온전히 이해하는 날이 오겠지. 그냥 따라 웃는건지, 머쓱한건지, 아니면 행복한건지 말이야.


그때쯤엔 이모도, 이모라고 말하기 쑥스럽지만 이모 스스로를 잘 이해해줄 날이 오겠지? 내가 지금 슬픈지, 아직도 슬픈지, 아니면 이제는 괜찮은 척 하는지. 좀 더 자신 있게 표현하면서 살고 있을까? 이준아 같이 이해해보려고. 그렇게 하고 싶어졌어. 나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태어난 거야. 너도 꼭 너를 이해하는 네가 되길 바라. 그렇게 먼 훗날 또 십수년 만에 연락이 닿아도 우리 건강하게 서로 만나는 거야. 그렇게 언니는 모르는 약속을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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