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 트럼프 시위
때는 2017년 초였다. 나는 야간수업 때문에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야간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을 가려고 했을 때였다. 나는 길거리가 평소와 다름을 인지했다. 길거리가 굉장히 어지럽혀 있었고 도로에는 쓰레기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상황인지 감도 안 왔다. 점차 도로 쪽으로 나가보니까 근처의 은행은 강도에게 털린 것 마냥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겁에 질렸다. 지금 여기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나는 티비에서 유럽이나 미국 쪽 사람들은 시위를 굉장히 격하게 한다고 들었었다. 이것이 만약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나는 당장 도망을 쳤어야 했다. 일단 침착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황을 돌아보니 이미 사태는 끝난 것 같았다. 주위도 조용했다. 이곳이 안전하다는 것을 인지한 후에 나는 무슨 사태가 벌어졌는지 파악하려고 노력을 했다.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난 걸까? 길바닥에는 못 보던 낙서들이 있었다. 낙서들은 전부 현 정부에 반(反)하는 내용이었다.
2017년 초는 트럼프가 당선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이다. 트럼프의 당선은 세계적으로도 그리고 미국 내에서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었다. 그의 스피치 스타일은 굉장히 직선적이었고 확고했다. 세계가 따라가고 있던 패러다임을 지향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기도 했었다. 캘리포니아는 아마 트럼프 당선에 가장 반발이 심한 지역 중 하나였을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상황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대통령이 당선되자 거기에 반발하려고 시위를 한 것이다. 은행은 모두 털리고 길거리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인간들은 무언가가 자신의 뜻대로 안 되면 짜증내고 화내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도 자신들과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면 반발 시위가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폭력을 휘두르진 않는다. 폭력이 일어나도 소수의 상황이고 절대로 시위의 주가 되지는 않는다.
예전에 언론을 통해 프랑스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뜻대로 안 되자 둔기와 최루탄을 들고 시위를 펼치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나는 시민 의식이 우리나라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바로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 마치 어린애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마 폭력만이 그들의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나 언론의 관심을 받으려면 조용한 시위보다는 무력시위가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이해가 잘 안 됐다. 굳이 자신들의 의견을 폭력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까지 표출을 해야 하나. 만약 내가 그 현장에 있었으면 다칠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
나는 각자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다른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까지 주입을 시키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게 폭력적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무력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정부 혹은 커다란 기관이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결국 폭력까지 사용하게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폭력이 과연 최후의 수단일까?
2017년 초는 트럼프가 당선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이기도 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건으로 시끄러울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나라가 택했던 방식의 시위와 대조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키기 위하여 대규모 시위를 선택했고 많은 사람들을 광화문 광장으로 불러 모았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이윽고 큰 무리를 형성했다. 사람들은 손에 무기 대신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이 대규모 시위는 거의 평화적으로 진행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와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이 시위의 핵심은 ‘비폭력’이었다. 폭력이 일어나면 자신들의 의도가 변질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부에게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최대한 한 목소리를 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폭력'을 계획에서 없애야 했다. 실제로 이러한 평화시위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일으켰고, 노인,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시위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 다른 사람들에게 까지 닿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알다시피 광화문에서 울러 퍼진 목소리는 청와대까지 닿았고 결국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나는 이 탄핵 시위가 폭력적으로 진행되었다면 절대 성공을 할 수 없었다고 자신한다. 폭력적인 시위는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민폐를 끼치게 한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그 시위를 본다면 참여하고 싶어 하기보다 피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면 많은 사람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시위대의 목소리는 결국 설득력을 잃어가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그 시위에 반대할 것이다. 왜냐하면 폭력시위는 위협적이고 공공질서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Berkeley Free Speech Movement라고 불리는 이 시위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내가 트럼프를 마음에 안 들어할 지라도 말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울분이 쌓였는지, 얼마나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사실 잘 모른다. 그 사람들은 폭력만이 유일하게 자신들의 화를 풀 방법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폭력은 최후의 수단이 되지 못한다. 적어도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는 말이다. 폭력은 오히려 희생자만 늘릴 뿐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으면 그 목소리의 크기를 키워 전달하는 것이 더 적절한 방법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크기를 최대한 크게 만들고 싶으면 비폭력이 정답일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나는 다시 한번 미국이 선진국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가 미국에서 배울 점도 많지만 나는 우리나라가 더욱 선진국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많았다. 우리나라의 평화 시위는 미국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권의 친구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곤 우리나라의 시민 의식이 높은 것 같다며 부러워했었다. 그때만큼은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