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라는 완장을 찼을 때 가장 무서웠던 말은 바로, 직원들이 나에게 "대표님! 점심 드셨어요? 같이 하시죠?"이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꼬리를 내리며 36계 줄행낭을 매번 친다. 어처구니없게도 제갈공명의 36계는 이럴 때 오지게 써먹는다. (표기상 대표로 쓰겠다. 나는 닉네임 혹은 이름으로 불리우는 문화에서 많이 지냈다.)
일반적으로 이 말이 이해되지 않는 분들이 상당수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직급이 말단으로 내려갈수록 이 말의 의미를 모르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통상 회사 규모가 50명, 100명이 넘어가면 임원은 임원끼리, 중간 관리자는 그 부류의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편안하게 먹는 게 일상일 터.
그러나 스타트업의 초창기는 많아 봤자 7~10명 남짓. 이른바 '가족?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기에, 자칫 형동생 호칭이 쉽사리 자리 잡히기도 한다. 또한 자유로운 분위기로 인해 임원 같은 건 의미 없을 때도 많다. 모두가 친구처럼 대화하고 지낸다. 그야말로 매일이 야자타임이다.
이런 자유분방한 기업문화에서 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그 과정에서 괴짜들도 많이 만났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갑자기 교회 성가대에 가야 한다며 오후 3시에 악기를 들고 교회로 가던 직원, 오늘은 날씨가 좋아 봄바람을 맞아야겠다고 떠나는 직원, 내 실수로 인해 하늘나라로 간 햄스터 친구 등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이 부분을 따로 떼어놓고 연재해도 할 말이 많을 듯하다.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도 자지러지지 않을까...)
암튼, 개인적으로는 삭막한 피라미드 조직이 싫었다. 그래서 어릴 때는 그런 문화를 타파하고자 했다. 지금은 피라미드 조직이 상황에 따라 필요할 때가 있음을 깨닫고 있지만, 당시에는 혈기황성한 모험가이기에 자유로운 문화를 선호한 건지도 모르겠다.
식사 같이 하자는 말이 왜 고민일까?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맞다. 감사하고 고마울 일이다. 그러나 이 말이 고맙게 들릴 때와 부담스럽게 느낄 때가 있다는 게 문제다. 눈치챘겠지만, 회사가 안정적으로 돌아가지 않을 때는 이 말이 참으로 부담스럽게 들린다.
나는 10시 30분쯤에 출근해 아침 겸 점심을 집에서 먹는다. 그러곤 저녁 7~8시에 마쳐 2시간 운동 후, 샐러드를 먹으면서 TV를 보거나 책을 보며 잠자리에 든다. 즉, 하루에 두 끼를 먹는 셈이다. 이러한 사이클을 거의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뜬금없이 나의 식습관과 이것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아니다. 상관이 있다. 그것 때문에 식습관이 뒤바뀌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직원들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는 말은 대표입장에선 밥을 사달라는 말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당연한 걸로 인식한다. 그래서 처음엔 한 번은 점심을 사준다. 그런데, 한번 사주면 관성이 되어, 추후에도 안 사줄 수 없다. 나의 팀원이기에.. 게다가 먹고살자고 하는... 밥 아닌가? 대표라면 빚을 내서라도 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식비가 매월 쌓이다 보면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땐 부담을 몰랐다. 왜? 매출이 좋았을 때니까... 그러다 매출이 반토막 나거나 우발변수가 발생되어, 돈맥경화가 찾아오게 된다. 그렇다. 그때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느 날, 12시 00분의 알람이 울린다. 한 직원이 나에게 다가와 섬뜩한 한마디를 던진다.
대표님, 식사하셨어요?
그의 목소리는 여러 잔상의 메아리로 나뉘어, 나의 고막을 찢고 달팽이 관 깊숙이 공명한다. 그 공명은 돌고래의 주파수 파장과 같은 신호로 나의 자아를 파고들어, 더 깊숙한 원초자아의 정수리에 화살처럼 날카롭게 꼽히게 된다.
식사하셨냐는 말. 이것은 전두엽과 변연계의 섬광이 내 머릿속을 휘젓는 것과 같다. 그러곤 머릿속에서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 '두당 얼마에 어디 갔을 경우 대략 OOO 원! else if 만약에 거길 안 가고 좀 더 비싼 곳으로 가자고 했을 시, 평균 얼마에 대략 20% 예산 초과! 나 거지인데...'
학교 다닐 때는 수학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런데 내가 수학을 하고 있다. 그것도 암산으로... 역시 사람은 상황에 놓이면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다는 말이 맞았다. 1명의 직원이 늘어난다는 것. 그만큼 식비와 경비가 생각보다 높아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직원을 늘리는 게 어느 순간 부담으로 다가오게 되면서, 점점 나 자신이 스쿠루지가 된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는 말처럼, 비용은 더 큰 매출로 매운다는 말을 하는 대표도 있다. 나 또한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물을 계속 붓는 게 의미 있을까? 그렇다고 너무 방어만 하다 보면, 속이 좁아진다. 즉, 포용력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태평양의 넓은 바다에서 수영했던 추억을 잊고, 작은 우물에서 더 마르지 않기 위해 가족 구성원과 싸우는 것과 같다.
오늘의 교훈: 시기와 시점에 따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Ps) 그 덕분에 나는 13kg의 살을 뺐다. 웃픈 현실이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