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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롱 Mar 30. 2021

제가 지금 진상 짓 하는 거예요?

예, 안타깝지만 당신은 진상입니다.



가끔 그런 고객들이 있다.

와, 어쩜 말로 이렇게 사람을 축 쳐지게 할 수 있지? 어쩜 저렇게 못된 말만 할 수가 있지? 싶은 사람들. 이 사람들은 '닥치고 내 말 먼저 들어!' 스킬을 시전 하다가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으면,



"혹시 지금 제가 진상 짓 하는 겁니까? 제가 진상이에요?"



물어보곤 한다.

분명 본인도 찔려서 물어보는 것일 테지만 나는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장구도 치고 북도 쳐준다.



"아닙니다~ 고객님! 계속 말씀해 주시면 제가 담당자에게 전달하여 불편사항 개선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삶이 힘들 때마다 하나씩 까먹으려고 쟁여둔 초콜렛... 이만큼 넣어놔도 일주일을 채 못간다... 혈관에 초코가 흐른다...





나는 민트 초코도 좋아하고 체리 쥬빌레도 좋아한다. 모카빵 속 건포도도 사랑한다. 그 외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들은 거의 대부분 호 낙인을 찍어주고, 내가 못 먹는 음식이라도 상대방이 원하면 기꺼이 앞자리에 앉아 숟가락만 빨다 올 용의가 있다. 왜냐면, 나는 큰소리를 싫어하는 평화주의자이니까.


때문에 웬만해선 진상 소리도 입에 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원래 목소리가 큰 고객도 있을 테고, 말이 빠르고 예? 어? 응? 추임새가 입버릇일 수도 있으니까. (제발 그렇다고 해주세요.) 섣부르게 진상 취급하지 말자, 말자, 말자.



"아니 이해가 안 간다고요. 내가 돈 주고 산 쿠폰인데 왜 유효기간이 있으며,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멋대로 쿠폰 사용을 못하게 한 다뇨. 저 이거 소보원에 신고할 거예요."


"고객님, 쿠폰의 경우 사용 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더욱이 지금 구매하신 쿠폰의 경우...(구매 시 안내 페이지 위아래, 양 옆, 구매창 위아래, 결제 확인 창에도 유효기간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대체 왜 못 보시나요?)


"아니 됐어요. 됐고요. 애초에 돈 주고 결제한 쿠폰에 유효기간을 정해두는 게 어디 있어요? 스타벅스 쿠폰도 돈 주고 사면 무한정으로 기간 연장 가능해요. 알아요? 대기업도 해주는데 당신들이 뭐라고, 어디서 사기를 쳐!"

(...라고 실제는 더욱더 제 가슴을 후벼 파며 말했지만, 조금의 각색을 담아 적어보았습니다. 이런 분들, 없을 것 같죠? 있더라고요. 어떻게 알았냐면,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객은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전화기 너머로 씩씩거렸다. 아니 유효기간 없는 쿠폰은 유치원생 딸랑구가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엄마 아빠 사랑해요. 평생 쓸 수 있는 안마 쿠폰! 을 쥐어주는 게 다 아니던가.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희가 안내 페이지에 유효기간에 대한 문구를 기재하였으나, 발견이 어려운 위치에 배치를 해둔 것 같습니다. 이 부분 수정하도록 하겠고요, 쿠폰은 한 번 더 확인 후 기간 연장이 가능한 지 답변드리겠습니다. 유효기간 만료 시 어플 알림과 카카오톡 알림 서비스로 안내 도와드리고 있으니, 꼭 알림 설정을 켜주세요."


"... 저기요."


"네, 고객님."


"지금 저 가르치시는 거예요? 유효기간 적어놨는데, 네가 못 본 거니까 다음부턴 너 알아서 잘 봐라 하고?"





하,

죽여주시옵소서, 전하...










사는 게 참 팍팍하다.

내 월급은 병아리 눈곱만 한데, 내가 써야 할 돈들은 한 여름 장맛비처럼 점점 더 굵어지기만 한다. 게다가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인가. 다들 원치 않는 강제 집순이 생활에 어딜 가나 답답한 마스크를 꼭꼭 차고 다녀야 하니,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화가 늘어난 것도 맞는 소리겠지. (이렇게라도 이해를 해야 사람에 대한 혐오가 좀 잦아들 것 같다.)


다 같이 힘든 시국이니까, 아주 사소한 일에도 불 같이 화가 날 수 있다. 원래는 다들 착한 사람들일 것이다. 이런 짓을 하면 진상인 걸 알기에 듣는 이로 하여금 부정의 말을 듣고 싶은 거겠지.


그래,

그러겠지.




그래도.

나는 어디 가서 저런 짓은 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내 잘못이 있다면 수긍하고, 몰랐던 사실을 알려준다면 감사하고, 해결해 준다면 밝게 웃으며 대화를 끝내야지.


나는 정말 "지금 제가 하는 짓이 진상짓이에요?!" 묻지 않는 어른이 돼야지. 흑흑.










* 해당 고객은 쿠폰 환불처리 완료되었습니다. 아직 이직할 회사를 찾지 못해 자세한 후처리를 말씀드리진 못하지만 그래도 잘 마무리 되었답니다~

다만 그 후유증으로 인해 저만 퇴사욕구가 더 강해졌다는 슬픈 사실...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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