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둘째 딸이 임신을 했다면서 외할머니 운운한다. 해영 씨는 미희가 대학물을 먹었으니 최소한 남자는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날 줄 알았다. ‘이 인간이 내 딸 미희의 남편이라고?’ 미희의 남편이라고 찾아온 남자는 뭔가 보통 사람들과는 달라 보였다.
해영 씨 앞에서 혼인 신고서를 보여 주면서 담배를 피우는 미희 남편, 해영 씨는 미희 남편 팔에 섬뜩한 문신만 눈에 들어왔다. 말 끝마다 나오는 육두문자, 해영 씨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싸늘한 눈빛, 뭔가 못마땅할 때마다 나오는 머리 쓸어 올리는 그 몸짓도 다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장모를 대하는 보통의 남자는 아니었다. 미희의 남편이란 작자는 그렇게 해영 씨를 만났다.
미희의 남편은 애가 생겼으니 결혼식을 해야 한다면서 돈을 달라고 하였다.
미희 남편은 다짜고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사돈이라고 함께 온 여자도 담배를 피운다. 여자한테서 풍기는 싸구려 화장품 냄새가 해영 씨의 코를 찌른다.
"아니, 여기가 어디라고 당신들 맘대로 와서 담배를 피우고 행패야?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경찰이란 단어에 그 둘은 콧방귀를 뀌었다. 신고한 경찰이 왔고 그들은 돌아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뒤로 미희 남편은 해영 씨에게 계속 돈을 달라고 했다. 문자를 하고 해영 씨가 받을 때까지 전화를 한다. 틈만 나면 집 앞에서 해영 씨를 기다린다.
“장모님! 엄마, 내 전화 왜 받아? 내가 엄마 딸 데리고 있어 줬잖아. 당신이 버린 딸, 집 나간 딸 내가 여태까지 재워주고 먹여주면서 애 엄마 만들어 놨는데. 솔직히 결혼식도 해 주고 집도 사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무슨 엄마란 사람이 이래? 당신 우리 수빈이 외할머니야. 외할머니 노릇은 인간적으로 해야 하지 않아?”
해영 씨는 협박을 하는 미희 남편의 정체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 강간, 폭행, 사기 등의 전과 17 범이다. ‘어떡하지, 이거 악질 중 악질이네. 미희 년, 집 싫다고 나가더니만, 아휴, 이런 놈을 만나냐?’ 아무래도 미희를 따로 만나봐야겠다.
해영 씨 앞에 있는 미희는 더 이상 예전에 미희가 아니었다.
노래하던 조그만 입술은 터지고 팔에는 시퍼런 멍이 잔뜩 있다.
부스스한 머리, 초점 없는 눈동자 뭔가 불안한 듯이 떠는 팔과 다리. 해영 씨는 할 말을 잃었다.
“미희야, 너, 맞고 살아? 얼굴이 왜 이래? 팔은??
당장 나와. 미쳤니? 네가 나오기라도 하면 엄마가 어떻게든 도와줄게. 그 새끼 사람 아냐. 돈 달라고 내 앞에서 욕할 때부터 알아봤어. 대체 얼마나 맞은 거야?"
“엄마, 나 도망 못 가. 도망치는 날이면 더 맞아. 도망가면 그 인간이 지구 끝까지 찾아올 거야."
무서워서 도망칠 수 없다는 딸 미희를 먼저 설득해야 했다.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미희가 자기 아들 수빈이와 함께 가정폭력 피해자 센터에 왔다. 하지만 여전히 미희는 불안해하고 있다. 해영 씨의 머리가 복잡하다. ‘어떻게 내 딸을 살리지? 내 딸을 이렇게 망가뜨린 그놈, 콩밥을 먹여야 하는데.’
해영 씨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집 나간 둘째 딸이 아니라, 딸 옆에 있는 거머리 같은 놈은 악질 중의 악질이다. 이 인간으로부터 벗어나야 내 딸 인생이 살 수 있다. 해영 씨의 머릿속이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