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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종달이 Oct 22. 2023

하얀 거짓말(2)


에밀리? 웬 국제 학교?



사실, 말이 집 주변이지, 집에서 40분 정도는 차로 가야 하는 곳에서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 


엄마는 영어인지 한국어인지 모를 말로 대답을 하였다. 


"여보, 뭐 해? 얼른 시동 걸어. 빨리 가야지. 너는 여기서 혹시 모르니까 있어."


"엄마, 어디 가?" 내가 물었다. 


"네 동생 찾았단다."


"응, 어디에서? 어디에 있대요?"




동생은 저금통의 밑바닥을 정확하게 잘라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은 비상금을 챙겨서 등교를 한 것이다. 

엄마에게는 평소와 똑같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를 한 채. 




성적이 안 나올 것을 알았던 내 동생. 

그런데 며칠 전에  동생은 엄마에게 1등을 할 것 같다고 말을 했다. 

엄마는 혼자서 공부하고 좋은 성적까지 받은 동생을 엄청나게 칭찬하였다. 


그렇게 김칫국 아닌 김칫국을 제대로 마신 우리 가족. 

동생의 성적은 완전 바닥이었다. 


공부를 안 했으니, 당연한 결과인데, 내 동생은 엄마에게 말할 용기가 나질 않은 것이다.


결국 12살의 조그만 여자아이는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아뿔싸! 통지 표가 나오기로 한 날. 동생은 엄마에게 

혼이 날 것을 안 것이다. 



자금을 마련하고 갈 동선도 미리 파악했겠지. 

그리고 학교 수업이 끝나자 버스를 타고 '외국인학교' 있는 곳으로 갔다. 


그 동네에서 배회하다가 외국인 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Hello! My name is........"


이 무슨 일인가?  

파란 눈, 금발의 외국인 선생님이 물었다. 

"What's wrong? Where do you live?"


My mom , daddy no  no!! 


"WHAT?"  

외국인 선생님이 놀랬다. 



맘, MOM , 쾍.. DIE... OK.DIE.. 

AND DADDY, TOO... 

No home!! 


동생은 엄마를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아빠도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자연히 내 동생은 '고아'가 되었고, 

'입양', '해외 입양'이란 영어 단어를 몰랐다.  

손짓, 발짓, 울음, 싹싹 빌기 등의 언어와 콩글리시를 사용해서 집에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표현했다.

결국 답답한 외국인 당직 선생님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선생님을  수소문했다.

그 선생님은 퇴근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성적이 잘 안 나왔다고 가출을 하면 안 돼요. 

엄마한테 설령 잘 봤다고 해도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그럼 되는 거야? 알았니?



그날 새벽, 놀란 얼굴 속, 안심되는 얼굴과 곧 폭발할 것 같은 화산 얼굴을 하고 있는 엄마를 

나는 분명 보았다. 


엄마는 용암 색의 얼굴을 하였다. 

울긋불긋, 얼굴에서 열이 나는 엄마는 

그날 밤, 동생과 거실에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나와 아빠는 덩달아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엄마 아빠를 졸지에 하늘나라로 보내 버린 내 동생의 

언어 센스는 무엇인지? 그 배짱은??




지금 생각해 보면, 

살아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의 거짓말?? 

초등학생의 철없는 반항??


아니면, 거짓말은 했는데 수습불가의 최선책? 

엄마의 건강을 위해서 '성적'을 고의적으로 숨긴.. 

그리고 공부 못하는 본인에게 화가 나서 

스스로 '해외입양'을 선택하려 했다는 것도... 

잘 모르겠다. 

'나라면 감히 상상도 못 했을 법한.....' 그런 일을 

내 동생은 하기 시작했다. 


그저 경이로웠다. 

동생의 순발력과 위기 대처 능력이.

어려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아이-바로 내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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