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말이 집 주변이지, 집에서 40분 정도는 차로 가야 하는 곳에서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
엄마는 영어인지 한국어인지 모를 말로 대답을 하였다.
"여보, 뭐 해? 얼른 시동 걸어. 빨리 가야지. 너는 여기서 혹시 모르니까 있어."
"네 동생 찾았단다."
"응, 어디에서? 어디에 있대요?"
동생은 저금통의 밑바닥을 정확하게 잘라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은 비상금을 챙겨서 등교를 한 것이다.
엄마에게는 평소와 똑같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를 한 채.
성적이 안 나올 것을 알았던 내 동생.
그런데 며칠 전에 동생은 엄마에게 1등을 할 것 같다고 말을 했다.
엄마는 혼자서 공부하고 좋은 성적까지 받은 동생을 엄청나게 칭찬하였다.
그렇게 김칫국 아닌 김칫국을 제대로 마신 우리 가족.
동생의 성적은 완전 바닥이었다.
공부를 안 했으니, 당연한 결과인데, 내 동생은 엄마에게 말할 용기가 나질 않은 것이다.
자금을 마련하고 갈 동선도 미리 파악했겠지.
그리고 학교 수업이 끝나자 버스를 타고 '외국인학교' 있는 곳으로 갔다.
그 동네에서 배회하다가 외국인 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Hello! My name is........"
이 무슨 일인가?
파란 눈, 금발의 외국인 선생님이 물었다.
외국인 선생님이 놀랬다.
동생은 엄마를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아빠도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자연히 내 동생은 '고아'가 되었고,
'입양', '해외 입양'이란 영어 단어를 몰랐다.
손짓, 발짓, 울음, 싹싹 빌기 등의 언어와 콩글리시를 사용해서 집에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표현했다.
결국 답답한 외국인 당직 선생님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선생님을 수소문했다.
그 선생님은 퇴근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성적이 잘 안 나왔다고 가출을 하면 안 돼요.
엄마한테 설령 잘 봤다고 해도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그럼 되는 거야? 알았니?
그날 새벽, 놀란 얼굴 속, 안심되는 얼굴과 곧 폭발할 것 같은 화산 얼굴을 하고 있는 엄마를
나는 분명 보았다.
엄마는 용암 색의 얼굴을 하였다.
울긋불긋, 얼굴에서 열이 나는 엄마는
그날 밤, 동생과 거실에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나와 아빠는 덩달아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엄마 아빠를 졸지에 하늘나라로 보내 버린 내 동생의
언어 센스는 무엇인지? 그 배짱은??
지금 생각해 보면,
살아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의 거짓말??
아니면, 거짓말은 했는데 수습불가의 최선책?
엄마의 건강을 위해서 '성적'을 고의적으로 숨긴..
그리고 공부 못하는 본인에게 화가 나서
스스로 '해외입양'을 선택하려 했다는 것도...
잘 모르겠다.
'나라면 감히 상상도 못 했을 법한.....' 그런 일을
내 동생은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