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피해자 센터에서 상담사들이 딸 미희의 상태를 파악해서 심리 치료, 정신적 치료가 들어갔다.
이혼을 절대 안 해주겠다는 그놈한테서 미희를 빼 와야 한다.
해영 씨는 변호사를 선임했다. 미희의 남편이란 그 새끼는 계속 해영 씨를 찾아와서 딸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친다.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부수고. 경찰에 신고를 해도 전과 17범은 역시 달랐다.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딸 미희에게도 문자와 전화로 계속 협박을 한다. ‘미희야, 좀 만 버텨. 엄마가 너 살려줄게.’ 해영 씨는 미희가 살 수 있을 집도 알아봤다. 다행히 시내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방 하나를 장기 임대 할 수 있었다. 논과 밭이 있는 시골 마을, 조그만 주택에 방 한 칸을 해영 씨는 계약했다.
미희가 집을 나온 지 석 달쯤 되었을 때, 해영 씨는 아직 기저귀를 차는 수빈이가 귀여워지기 시작했다. ‘이래서 피가 물보다 진하구나.’ 수빈이의 장난감과 기저귀를 사 갖고 미희에게 갔다.
수빈이가 집 앞마당에서 놀던 장난감 몇 개와 미희가 남겨놓은 메모만 있었다. 그 뒤로 딸에게 1년에 한 번씩 문자가 왔다. ‘빚지면서 내가 지 살리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그걸 모르고 그 새끼한테 다시 돌아가? 은혜도 모르는 년.’
딸 미희는 10년간을 맞고 도망치 고를 반복하다 애들을 다 포기하고 이혼을 했다고 한다.
마흔이 훌쩍 넘은 딸 미희는 교도소에서 해영 씨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해영 씨가 한 달에 딸 미희를 만나던 어느 날, 미희는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둘째 딸, 미희는 그렇게 해영 씨 곁을 떠났다.
오늘은 미희가 죽은 지 딱 일 년이 되는 날이다. ‘넌, 이제 좀 살만하지? 너를 쫓아다녔던 그 새끼부터 네가 못 놨던 네 자식들. 그리고 나한테서 조차 영영 벗어났으니.
정말 거기서 만큼은 행복하게 지내라. 미희야.’ 초등학교 가기 전 처음 해영 씨에게 온 미희가 가장 좋아했던 고구마튀김이 수북이 쌓여 있다.
엄마가 고구마튀김을 소쿠리 가득 담아서 내게 준 날,
엄마는 내게 조용하게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