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복 벗긴 마음이 걸린 저녁
전봇대와 전봇대 사이
축축 늘어져 있는 전선들이
어쩐지
사람 사이
감정 같았다.
때론 팽팽하게
때론 늘어지게
사람들은 그 누군가들과
전선줄 몇가닥 씩
이어 붙여놓고 산다.
견고한 피복 아래로
그럴듯하게
내 감정을 사람들에게 보냈던 적
분명, 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언젠가 내 삶에
심하게 바람불었을 적이던가
아니면
주책맞게 비가 끊임없이 내렸던 적이던가
그것도 아니면
쥐새끼같은 자괴감이 나를 갉아먹던 적이던가
견고한 피복이 해지며
숨겨왔던, 감쳐왔던
감정들이 사람들에게
배달 되었었다.
표정을 숨길 수 없게 된
내 감정들이
당신들을 찾아갔을 때
누군가는 당황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침착하게 자신의 피복을
점검하며 나를 달랬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피복 벗겨진 흉한 내 감정은
그들로부터 거부당했고
지금도 내 삶 어딘가에
너덜너덜
잘려진 채 걸려있다.
다행히
그 몇 번의 경험들로
그 누군가와 감정을 나눌 땐
절대 피복 벗긴 마음을
내보이지 않는다.
잘 된 것일까?
그래 잘 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보니
내 감정의 피복들이
너무 견고해 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