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집행본부 근처에서의 사투

by 히다이드

브뤼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와플이었고, 그다음은 EU 집행 본부였다. 브뤼셀에 온 김에 뉴스에서나 볼 수 있던 그 건물을 직접 보기로 했다. 그랑플라스에서 출발해 브뤼셀 중앙역 뒤편의 언덕으로 올라가자 브뤼셀 왕궁을 비롯해 공공기관들이 모여있는 지역이 나타났는데, 그곳을 가로지르는 긴 대로의 끝에 EU 본부가 있었다.


대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커피 한 잔 외에 마신 게 없는데도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이다. 계속 걷다 보면 카페라도 나오겠지 하는 생각에 참고 걸었는데 대로의 끝에 있는 EU 본부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EU 본부 주변은 오후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고 한산했다. 텔레비전에서 자주 본 곳이라 기대를 하고 갔지만 실제로 보니 일반 건물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주변에 EU와 관련된 다른 기관들도 있었는데 아랫배에서 생리적으로 시급하다는 신호가 계속 와서 자세히 살펴볼 여유는 없었다.


사무용 건물들이 많아서 커피숍이라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길 건너편까지 가서 들어갈 만한 곳이 없는지 찾고 있는데, 바로 옆 공원에 멀리 개선문처럼 생긴 건물이 있는 게 보였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 같아 보였고, 공원 안에는 공중 화장실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건물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보니 개선문이 아니라 전쟁과 관련한 박물관처럼 보였는데 박물관 문은 닫혀 있었고 공원인데도 불구하고 화장실이 없었다. 정말 너무 급했는데 그렇다고 노상 방뇨를 할 수는 없었다.


사색이 되어 왔던 길을 돌아가는데 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이 걷히면서 그 사이로 황금빛 햇살이 공원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 아래서 벤치에 앉아 한가로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는데 나도 잠시나마 그 여유를 맛보고 싶어졌다. 숙소로 돌아가면 ‘뮬’이라는 벨기에 식 홍합 요리를 먹을 텐데 그 전에 마트에서 산 초밥 도시락을 처리해야 했다.


싸면 싸리라는 각오로 옆에 있던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처음에 앉는 게 좀 불편했지만 막상 앉고 나니 견딜 만했다. 가방에서 초밥 도시락을 꺼내어 먹으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사람도 별로 없고 한적했다. 바로 옆 벤치에 앉은 여자 둘이서 나누는 알 수 없는 말들에 귀를 기울이며 박물관을 보고 있는데, 그 여자분들과 함께 산책을 나왔다 여자들끼리 따로 얘기를 나누는 동안 혼자 멍하니 고독을 즐기는 기분이었다. 잠시나마 먼 이국땅에서 일행을 만난 것 같았다.


초밥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햇빛 때문에 몸이 따뜻해져서인지 아니면 얼마만큼 걸으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알기 때문인지 여전히 급하긴 했지만 올 때와 같은 긴박함은 안 느껴졌다. 석양으로 물들어가는 도시의 모습을 감상하며 숙소까지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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