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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다이드 Jun 01. 2023

하이랜드로 향하는 기차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만 음식이 든 비닐봉지와 캐리어 가방을 드느라 우산을 잡을 손이 없었다.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킹스크로스 역까지 캐리어 가방을 밀고 갔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어린 소년인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가기 위해 이 역 9와 3/4 플랫폼에서 열차를 타던 게 생각났다. 수레를 밀고 벽으로 뛰어 들어가던 그 역사적 현장을 재현해 놓은 곳도 있다는데 찾아가 보지는 않았다. 실제 눈으로 보기보다 상상 속에만 남겨놓고 싶었다.


 하이랜드로 알려져 있는 스코틀랜드 북부 지방으로 가려면 꽤 먼 길을 가야 했다. 잉글랜드 기차를 타고 에든버러까지 간 후에 스코틀랜드에서 운영하는 기차로 갈아타고 인버네스까지 가야 했다. 그곳에서 아일 오브 스카이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몇 시간 동안 더 달려야 내가 머물게 될 포트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하이랜더’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죽지 않는 저주스러운 운명을 타고난 전사들이 최후의 1인이 되어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자 결투를 통해 서로의 목을 베러 다닌다는 내용이었는데, 영화의 배경으로 나오던 스코틀랜드 북부의 척박한 땅과 음산한 분위기가 어른이 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언젠가 스코틀랜드에 간다면 하이랜드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카메라로 창밖 풍경을 쉴 새 없이 담았다. 나중에 잉글랜드 남부의 비옥한 평야가 어떻게 척박한 땅으로 바뀌어 가는지 한눈에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잉글랜드 남부는 목초지가 많았다. 폴란드와 독일처럼 드넓은 평야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간혹 풀을 뜯고 있는 양들도 보였는데 내가 상상하던 영국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다 열차가 스코틀랜드에 가까워지면서 오른편으로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가 오는 북해의 모습은 유난히 을씨년스러웠다. 바다뿐만 아니라 열차가 지나가는 예스러운 분위기의 마을들도 왠지 모르게 음산한 느낌이었다. 짙은 먹구름 아래 어느 낡은 건물의 방 안에서 누군가 지친 채 의자에 기대어 앉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마음의 유혹과 씨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에든버러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다시 북쪽으로 가는데 열차가 조금씩 높은 곳으로 올라가더니 숲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나무들이 많아서 약간 놀랐는데 계속 달리다 보니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황량한 벌판과 산들이 나타났다. 이 느낌이야말로 내가 동경하던 하이랜드의 모습이었다. 인버네스에 가까워지자 먹구름으로 가득하던 하늘을 벗어났다. 짙은 먹구름과 파란색 하늘의 그 드라마틱한 경계선을 지나자 무서울 정도로 거무칙칙하던 대지가 햇빛을 받아 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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