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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다이드 Jun 19. 2023

석양 속의 광장

 다리를 건너자마자 나타난 마을에서 버스가 정차했다.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스산한 날씨에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무사히 섬에 들어왔다는 안도감 때문에 그 모습마저도 평온해 보였다. 런던에서 출발해 기차가 안 들어오는 이 섬까지 오는 교통편을 연결하느라 얼마나 머리를 쥐어짰는지 모른다. 스코틀랜드 버스 예약 사이트에서 구한 시간표와 기차 시간표를 놓고 며칠 동안이나 고민한 후에야 동선을 짤 수 있었다. 

 버스가 마을을 벗어나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있는 섬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몰아치는데 마치 땅에 내려앉은 비구름 속 저주받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몇십 분을 더 달렸다. 달리는 동안 비가 잦아들면서 섬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먹구름 아래 섬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황량했다. 차창 밖으로 바닷가 바로 옆 외딴곳에 작은 집 한 채가 보였는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벌판뿐인데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버스가 아일 오브 스카이 섬의 중심지인 포트리에 들어섰다. 바다 건너 섬이 보이는 아름다운 항구 마을이었다. 마을 중심부의 광장에서 버스가 멈춰 서고, 마침내 스코틀랜드 북서쪽 끝이자 이 여행의 북서쪽 끝인 아일 오브 스카이에 발을 내디뎠다. 이곳에 오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한 달간 달려온 여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괜히 감상에 젖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데, 석양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구름 아래로 이름을 알 수 없는 새 두 마리가 바쁘게 날갯짓을 하며 광장을 가로지르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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