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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다이드 Jun 06. 2023

포트리로 가는 버스

 열차가 '인버네스' 역에 도착하고,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버스터미널을 향해 바쁘게 걷기 시작했다. 역 근처에 버스터미널이 있었지만 혹시라도 버스를 놓치면 낭패였다. 인버네스에서 포트리 시내까지 직접 들어가는 버스가 별로 없었다. 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가며 잠깐 동안 본 인버네스는 아담한 도시였다.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따뜻한 햇빛 아래 보는 그 예스런 거리의 풍경이 왠지 정겹게 느껴졌다.


 버스를 탈 때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늘 불안했는데 다행히 어렵지 않게 버스 터미널을 찾을 수 있었다. 버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데 바로 앞에 ‘Portree’라고 써져 있는 917번 버스가 보였다. 한국에서 버스 티켓을 출력해 왔기 때문에 터미널에서 따로 표를 살 필요가 없었다. 바로 버스로 다가가 운전기사에게 표를 보여주고 버스에 올라탔다. 자리를 찾아가 앉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버스 안에 화장실도 있었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포트리 시내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중간에 무슨 일이 있어도 버스에서 안 내리겠다고 다짐했다.


 버스가 인버네스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릴 때만 해도 하늘이 파랗고 간간히 그림을 그려놓은 것처럼 짙은 구름이 보여서 좋았는데, 도로가 좁아지고 울창한 숲과 강이 나타나면서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다시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제법 높은 산들이 보였는데,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한 산들이 중턱부터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그 구름을 헤치고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감히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존재들과 마주치게 될 것 같아 괜히 긴장이 됐다. 영화 ‘하이랜더’에서 목을 베러 다니던 전사들이 자꾸 생각났다.

 인버네스에서부터 스코틀랜드 북부를 가로질러 달린 끝에 마침내 아일 오브 스카이 섬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섬과 마주 보고 있는 마을의 이름은 카일 오브 로할쉬( kyle of lochalsh )인데 원래 이 마을까지 기차를 타고 오려고 했다. 그런데 마을에서 아일 오브 스카이로 들어가는 버스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 인버네스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차창 밖의 버스 정류장을 내다보며, 구글 스트리트 뷰로 기차역부터 버스 정류장까지 오는 길을 살펴보던 때가 생각났다. 그 때 제시간에 버스 정류장에 올 수 있을지를 따져보느라 하도 많이 봐서 이 마을은 이미 와 본 느낌이었다. 섬에 들어가려면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거대한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다리가 길진 않았지만 배들이 지나다니도록 상당히 높게 지어져 있었다. 창밖으로 섬 안의 산들이 비구름에 가려져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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