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맨을 만나고 ‘퀴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산이 높지는 않았지만 내려오려면 한참을 걸어야 했다. 버스 시간에 늦을까 봐 바쁘게 걸었는데 도로까지 내려와 시계를 보니 다행히 버스가 올 때까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정류장이 따로 있는 게 아니어서 도로 한 옆에 서서 버스를 기다렸는데, 멀리서 내가 탈 버스가 오는 게 보였다. 손을 들어 버스를 세워달라고 신호를 했는데, 버스는 내 앞을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아침에 버스에서 내렸던 곳이었는데 원래 정차하는 곳이 따로 있거나 아니면 나를 못 본 것 같았다. 손을 흔들면서 버스를 쫓아갔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버스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퀴랑’까지 이십 킬로미터 정도를 걸어갈 수는 없었다. 다음 버스가 바로 올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무한정 기다릴 수도 없었다. 영화에서 봤던 걸 흉내 내기로 했다. 뒤에서 달려오는 차를 바라보며 오른팔을 주욱 뻗은 후에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원래 아무 차한테나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릴 정도로 배짱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고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시도는 하지만 정말로 누가 나를 태워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한 대, 두 대, 어디서 본 걸 흉내 내고 있냐고 비웃듯 차들은 그냥 지나가 버렸다. 어쩔 수 없나 보다 생각하고 도로를 따라 퀴랑으로 걷는데 지나가던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맙소사, 정말로 차를 얻어 타게 될 줄은 몰랐다.
차에 올라타면서 인사를 드렸는데 운전하시는 할아버지도 반갑게 맞아주셨다. 여행 중이냐고 물어보신 할아버지는 나에게 여기까지 온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셨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아일 오브 스카이까지 온 과정을 말씀드렸는데 할아버지는 상당히 흥미롭게 들어주셨다. 내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서 알아듣기 힘드실 텐데 열심히 듣고 이해하려고 해 주시니 감사할 뿐이었다. 퀴랑이 가까워지자 할아버지가 도로에서 내려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셨다. 걷는 걸 좋아해서 퀴랑까지 걸어갈 거라고 했는데 알겠다고 하신 할아버지가 도로에서 멈추지 않고 퀴랑으로 올라가는 길로 들어섰다. 해안가의 도로에서 퀴랑까지 올라가는 길도 꽤 멀었다. 퀴랑 정상의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다. 감사할 뿐이었다. 작별 인사를 드리자 할아버지도 인사를 하시고는 차를 돌려 가던 길을 가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