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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다이드 Aug 20. 2023

마을에 울려 퍼지던 백파이프

 주차장에서 산 아래까지 구불구불한 경사길을 따라 한참 동안 달렸다. 날 태워다 준 할아버지가 정상 근처 주차장까지 데려다준 이유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내리막길이라 뛰는 거 자체가 힘들진 않았지만 혹시라도 포트리행 버스를 놓칠까 봐 쉬지 않고 달려야 했다.


 달리는 중에 도로 바로 옆에서 풀을 뜯는 양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귀여웠다. 풀을 뜯다 내가 가까이 가면 고개를 들어 날 빤히 쳐다봤는데 그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도망가지도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나를 지켜보다 내가 지나가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풀을 뜯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구보를 하듯 쉬지 않고 달리는데도 마음은 가벼웠다.


 해안 도로에서 퀴랑으로 올라오는 갈림길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달려가 시계를 보니 다행히 버스 도착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다. 설마 지붕이랑 의자까지 있는 정류장을 그냥 지나치진 않겠지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버스가 오는 쪽을 계속 바라보며 여차하면 도로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안 도로에서는 퀴랑이 안 보였다. 근처 목초지에서 풀을 뜯는 양들과 바다, 정류장 바로 옆에서 잔디를 깎는 남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중에 버스가 다가왔다. 다행히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탈 수 있었다. 먹구름이 걷히고 석양을 받아 빛나는 섬의 모습은 아침과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아침에 봤던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잿빛 벌판이 늦은 오후의 햇빛을 머금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책하고 싶은 낭만적인 벌판이 돼 있었다.


 포트리 시내에 무사히 도착해 저녁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며 걷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백파이프 소리가 들려왔다. 스코틀랜드 아니랄까 봐 백파이프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멀리서 악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스커트를 입은 군인들이 대열을 맞추어 행진하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마을의 학생들로 구성된 악대였다. 남자 여자 학생들이 중년 남자의 지휘를 받으며 행진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쳐다보는 걸 쑥스러워하면서도 각자 자기가 맡은 악기를 훌륭히 연주하고 있었다.


 악대를 지나쳐 항구에 있는 음식점에서 피쉬 앤 칩스를 포장해서 나왔다. 가게 안에 먹을 공간이 없었는데, 따끈따끈한 피쉬 앤 칩스를 들고 어디서 먹을지 고민하다 일단 광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광장에서는 아까 지나친 악대가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악대가 연주하는 걸 보며 먹고 싶었는데 버스 정류장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벽이 바람을 막아주는 정류장은 무료 카페나 마찬가지였다. 밖은 추웠지만 유리벽 안의 정류장은 온실처럼 따뜻했다. 정류장 안의 의자에 앉아 악대의 모습을 지켜보며 만찬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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