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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다이드 Jul 30. 2023

산비탈의 양들과 검은 연못

 왜 그리 바람이 세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휘날리고 바람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나는 추워서 몸까지 덜덜덜 떨었다. 나름대로 껴입고 왔는데 바람이 옷을 그대로 통과하고 있었다. 그 장소에서 바람을 맞고 있다는 사실이 흥분돼서 더 떨리는 것 같았다.


 퀴랑은 꼭대기가 평평한 산이었다. 주차장에서도 멀리 퀴랑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꼭대기에 올라가는 길은 산 주위를 빙 돌아가야 나오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따라 절벽 옆으로 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길이 좁아서 맞은편에서 사람들이 오면 옆으로 비켜서 기다렸다 가야 했는데 그렇다고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오가며 만들어진 길은 절벽의 밑부분에 있어서 설혹 길에서 떨어진다 해도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닌 가파른 산비탈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었다. 각도로 얘기하면 60도에서 70도 정도였는데 풀로 덮여있는 민둥산의 가파른 경사를 잘 미끄러져 내려가면 산 밑에 빨리 도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른 경사인 건 분명했다. 그 가파른 경사를 방목한 양들이 돌아다니며 풀을 뜯고 있었는데, 무섭지도 않은 듯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대단할 뿐이었다. 길 바로 옆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들과 마주치기도 했는데, 엉덩이에 파란색 스프레이가 뿌려져 있는 양들은 사람들이 익숙한지 내가 다가가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퀴랑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을 봤을 때 조금만 옆으로 돌아가면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올 줄 알았다. 앞에 있는 절벽만 돌아가면 뭔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 홀린 듯 걸었는데, 몇십 분을 걸었지만 정상으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고 기껏해야 절반 정도밖에 못 온 것처럼 보였다. 자리에 멈춰 섰다. 포트리까지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몇십 분을 더 걸으면 퀴랑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겠지만 돌아오는 시간을 생각하면 포트리행 버스는 포기해야 했다. 올 때는 운 좋게 차를 얻어 탔지만, 갈 때도 얻어 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발걸음을 돌리기로 했다. 거기까지 걸어온 게 아까웠지만 꼭대기에 못 올라가서 그렇지 산 주위를 빙 돌아오며 꼭대기에서 볼 수 있는 건 이미 다 본 상태였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들어 선 채로 주변을 빙 둘러봤다. 오가는 사람도 없고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바로 옆에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얼마나 깊은지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그 자그마한 연못이 우물처럼 깊게 파여 있는 걸 상상하니까 빨려 들어갈 것 같아 무서워졌다. 멀리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와 그 옆의 내가 가지 못할 길로 걸어오는 사람들을 부럽게 바라보다, 뒤로 돌아 주차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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