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여행, 대륙 횡단
씻고 짐을 챙기고 있는데, 첫날 저녁에 찾아왔던 남자가 갑자기 집 안에 들어섰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들어왔던 남자는 방 안에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날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던 남자가 이번엔 당황한 듯 내 눈을 바라보며 해명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 집의 샤워실에 문제가 생겨 샤워를 하러 왔다고 얘기하고 있었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호스트 할아버지가 외국으로 원정 응원을 하러 간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뭔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집에 들어온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남자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혹시 몰라 호스트 할아버지에게 옆집 남자가 당신이 없는 동안에 당신 집에 들어왔었다는 메일을 남겨놓았다.
씻고 있는 남자를 뒤로 한 채 숙소를 나왔다. 이제 요크로 간다. 한국에서 여행 계획을 짜며 가장 잉글랜드적인 게 무엇인지를 고민할 때 순정만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었다. 랭커스터 가와 요크가의 장미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만화였는데,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미남 귀족 청년의 우수에 찬 눈이 자꾸 떠올랐다. 그 만화의 배경 속에 한 번 가보기로 했는데, 랭커스터 가문이 있던 랭커셔 주는 리버풀에 들를 것이라 따로 가볼 필요가 없을 거 같았고 요크가의 중심지였던 요크를 방문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