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에서 동쪽으로 잉글랜드 중부를 가로지르며 로마에 의해 북쪽으로 밀려난 켈트족이 왜 그렇게 로마를 미워하고 싸움을 벌였던 건지 알 수 있었다. 창밖으로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평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들 앞에서 봄에 어울리지 않는 강풍을 맞던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그 풍요로운 평원의 한가운데에 오랜 시간 자리 잡아 왔던 요크 역시 풍요로운 도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지나 도착한 요크 역의 플랫폼은 약간 한산한 분위기였다. 플랫폼에 있는 카페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분들이 보였는데 왠지 모를 여유가 느껴졌다.
역을 나오자 요크 성의 성벽이 나타났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바로 옆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얘기하는 걸 듣는데, 중세의 한 거리에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 도시는 번화한 대도시의 느낌은 아니었다. 조용하지만 기품이 흐르는 도시였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나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도시였다. 좁다란 골목 양 옆으로 늘어선 상점 건물들은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면적이 넓어지면서 골목을 향해 머리를 내밀고 있는 독특한 모습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봤던 거리 한편에서 검은색 코트를 걸치고 마술쇼에서 봤던 높이가 높은 검은색 모자를 쓴 신사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나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가보니 유령 투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에든버러에서도 봤지만, 오래된 도시에서는 유령 투어를 즐기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것 같았다. 이 아기자기한 거리에 밤만 되면 유령이 돌아다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신사의 얘기를 듣는 사람들이 몰려있는 골목의 바로 옆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는데, 식당 안에서는 또 다른 흥미로운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모임을 주관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나에게도 명함 크기의 홍보지를 주고 갔는데, 질문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신은 존재하는가? 과학이 신이 틀렸음을 입증하지 않았나? 종교는 악에 대해 책임이 없는가? 기독교는 흥을 깨는 존재가 아닌가? 신이 어떻게 고통받는 걸 허락하는가? 성경은 가짜 뉴스가 아닌가?' 처음에는 무신론자들의 모임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질문을 가만히 살펴보니 교회에서 주관하는 모임 같았다. 식사도 팔고 술도 파는 펍이었는데, 사람들을 찾아 그곳까지 찾아온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무작정 걷다 성의 한가운데에서 마주쳤던 거대한 요크 민스터 성당이 생각난다. 고딕 양식의 웅장한 성당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파란 하늘 아래서 쬐는 따뜻한 오후의 햇빛을 더 여유롭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높다란 성당의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시끄러운 소리를 지워봤다. 몇 백 년 동안이나 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성당이었다. 이 시간 때쯤이면성당 앞을 거닐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성당의 꼭대기와 맞닿아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