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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다이드 Aug 16. 2024

139. 요크 성벽을 걷다

나의 첫 여행, 대륙 횡단

  요크에서는 딱 하룻밤만 머물기로 돼 있었다. 점심 무렵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 전, 오전에 요크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걸어보기로 했다. 내가 머무는 집 바로 앞에도 성벽이 있었는데, 군데군데 성벽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성벽 위를 걷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다들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며 천천히 성벽을 돌았다.


  수백 년 된 성벽은 끊긴 구간이 거의 없이 연결돼 있어서, 성벽을 따라 걸으면 요크의 전체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수백 년 된 성벽 너머로 철길과 도로를 달리는 트럭들이 보일 때는 약간 실망스러웠다. 성벽 너머로 펼쳐진 드넓은 평원을 바라보며 저 멀리서 곧 적의 군대가 모습을 드러낼 것 같은 긴장감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는지 성벽 밖의 풍경은 내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사는지를 상기시켜 줄 뿐이었다.


  성벽 안쪽으로는 고층 건물이 없었다. 몇 백 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오래된 건물들과 산업 혁명 시대에 지어진 것처럼 보이는 붉은색, 흰색의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마차와 함께 이제 막 사람들에게 선을 보이기 시작한 투박한 형태의 자동차들이 다니는 거리를 사람들이 분주히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요크 민스터에 가까워지자 넓은 마당을 가진 고급 주택들이 나타났다. 수백 년 된 성의 역사와 어울리는 지은 지 오래된 주택들이었는데, 따뜻한 햇살 아래 널찍한 잔디 마당과 어울리는 여유와 기품이 느껴지는 집들이었다. 괜히 부러워져서 이런 집에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일까 상상하며 걸었다. 무성한 나무 사이로 보이는 요크 민스터의 모습은 순정 만화의 한 페이지 속 장면과 똑같았다. 중세 기사들이 성벽에서 바라보던 것과 같은 모습을 바라보며 나 역시 잠시 동안 순정 만화의 한 장면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성벽을 걷다 중간에 밑으로 내려오기도 했다. 한 공원에 들어가 주변에 있는 낯선 이들과 함께 잔디밭 위에서 여유를 즐겨보기도 하고, 구시가지에서 동네 시장의 모습도 살펴봤다. 기차를 탈 시간이 가까워져서 전날 봐뒀던 구시가지의 한 음식점에서 훈제 돼지고기로 만든 햄버거를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느라 숙소에서 먹지는 못하고, 요크역에서 리버풀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플랫폼 의자에 앉아 먹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훈제 돼지고기를 잘게 찢어서 빵 안에 넣은 햄버거는 일반 햄버거보다 훨씬 담백했다. 내가 좋아하는 감자튀김은 없었지만, 그 대신 곁들여 나온 작은 당근과 아스파라거스도 훌륭했다. 건강한 한 끼 식사를 하는 기분이었다.  하나 더 사 올 걸 하고 뒤늦게 후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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