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었다. 잠에서 깨 시계를 보니 너무 늦지 않게 적당히 푹 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방문하려는 곳들이 다 근처에 있어서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누운 채로 어떻게 파리에서의 첫 아침을 보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거리의 카페에서 커피 한잔과 크루아상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일어나 씻기 시작했다.
나갈 준비를 마치고 상쾌한 마음으로 파리의 아침을 열기 위해 문 앞에 선 순간, 문에 문고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눈이 의심스러웠다. 잘못 본 줄 알고 다시 찬찬히 살펴봤는데 원래 문고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없는 게 맞고, 대신 문 한가운데에 긴 줄이 늘어져 있는 손잡이가 있었다. 그걸 돌리면 되는 줄 알고 돌려봤는데 손잡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설마 이럴 리가 없다며 처음에는 웃으며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바로 전날 키로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집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창밖을 내다보기도 했는데 1층이나 2층도 아니고 너무 높아 현실성이 없었다. 파리에서의 금 같은 시간이 집안에서 문을 열지 못해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 호스트에게 메일도 보내고, 전화도 해봤는데 바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 몇십 분이 지나고 마침내 호스트와 통화를 하게 됐는데, 문을 열 수 없다는 나의 연락에 호스트 역시 짜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로 연락하는 게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여길 나가야 했다. 호스트 아주머니는 자기가 키를 맡겨뒀던 이웃에게 연락을 해보겠다고 했다. 방법을 못 찾으면 어떡해야 할지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다행히 이웃에게 여분 키가 있었다. 다만 이웃이 잠시 외출을 한 상태라 바로 올 수는 없었고 그가 올 때까지 집안에서 기다려야 했다.
다시 몇십 분이 흐르고 문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이웃이 문을 열고 등장했다. 고맙다고 하는 나에게 이웃은 일부러 들으라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나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문을 열어준 게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었다. 이웃에게 어떻게 문을 여냐고 물어보니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문 한복판의 손잡이에 늘어져 있던 줄을 밑으로 당기면 문이 열리게 되어 있었다. "메흐시"를 연발하며 이웃을 보낸 후에 마침내 문밖으로 나왔다. 오전 시간을 다 날린 후였다. 커피와 크루아상은 다음날 즐기기로 하고 오르세 미술관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원래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려고 했었지만 이날은 시간이 부족해 다 돌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