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강을 따라 걷게 될 줄은 몰랐다

by 히다이드

런던 하면 특정 장소들이 떠올랐었다. 그래서 런던에 가면 그 장소들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파리는 특정 장소들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도시 자체가 떠올랐었다. 그래서 파리에 도착하면 그 거리를 걸으며 분위기에 취해보는 걸 제일 하고 싶었다. 다른 일 때문에 며칠간 숙소를 비우게 된 호스트가 키를 맡겨뒀다고 알려준 이웃에게서 키를 받고, 숙소 아파트의 현관문을 열자마자 캐리어 가방과 배낭을 입구에 내려놓고 작은 백팩만 챙겨 바로 문을 닫고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짐을 내려놓고 나와서인지 발걸음도 가볍고 괜히 기분이 들떴다. 센강을 사이에 두고 루브르 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숙소를 잡은 덕에 아파트 옆 도로에 나오자마자 센강과 함께 파리가 나타났다. 선선한 강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듯 여유 있게 걸었다. 먼저 파리 뮤지엄 패스를 사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부터 갔는데, 영화에서 봤던 그 유리 피라미드를 통해 지하로 내려가자 쇼핑몰과 여러 편의 시설로 이어지는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박물관의 매표소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매표소로 다가가 안에 있던 여자 직원에게 영어로 파리 뮤지엄 패스를 사고 싶다고 했는데, 내 얘기를 들은 직원은 딴청을 피우며 건성으로 티켓으로 챙겨 나에게 내밀었다. 화가 난다기보다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짧은 순간 머리를 스쳐가는 게 있어 "메흐시"라며 프랑스어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딴청을 피우던 여자 직원의 뾰로통한 얼굴이 갑자기 소녀의 환한 미소로 채워지며 "메흐시 부쿠"라는 감사 인사가 돌아왔다. 이곳은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였다. 그 환한 미소 속에서 자기 나라와 언어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 날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마치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박물관을 나와 노트르담 성당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파리에 처음 도착한 날의 첫 끼니인데 아무거나 먹고 싶지는 않았다. 거리에 내놓은 테이블에 앉아 파리지앵처럼 식사를 즐기고 싶었다. 파리에 어울리는 근사한 식당을 찾기 위해 한 번화가로 들어섰다. 실외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싶었지만 지나가는 사람마다 힐끗 쳐다보며 지나가는 구경거리가 되는 건 질색이었다. 아무도 없는 썰렁한 거리에서 혼자 식사를 하며 운치를 즐기고 싶지도 않았다. 적당한 수의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며 활기가 유지되고 있는 거리에서, 혼자 실외 테이블에 앉아 먹어도 자연스러울 것 같은 분위기에, 음식의 맛도 좋아야겠지만, 가격 역시 너무 비싸지 않은 식당을 찾아 걷다 마침내 발견했다. 너무 크지 않은 편안한 분위기의 레스토랑들이 몰려있는 골목에서 한 식당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탄두리 치킨 스테이크가 주메뉴로 나오는 정식을 주문했다. 식전 빵이 나오고 샐러드가 나온 후에 주메뉴인 탄두리 치킨이 마요네즈 소스에 버무려진 감자와 함께 나오고 마지막으로 후식인 후르츠 칵테일이 나오는 잘 짜인 한 끼 식사였다. 이런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몸 안에서 환호성을 치는 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노을로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센강을 따라 걸었다. 파리에서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장소가 센강 근처에 몰려 있었다. 노트르담 성당과 퐁뇌프의 다리를 지나 루브르 박물관에서 샹젤리제 거리를 향해 걷다 보니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는 콩코드 광장이 나타났다. 공원의 가로수길을 지나 샹젤리제 거리에 도착했는데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과 현란한 전광판으로 도배된 시끌벅적한 모습을 상상했었지만, 실제 거리의 모습은 생각보다 북적이지도 않고 차분하면서 우아한 기품이 흐르는 세련된 모습이었다. 그 거리의 끝에 개선문이 있었다. 한 번도 와 본 적은 없지만 많이 봤었던 곳이었다. 직접 와서 그 앞에 서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 한참 동안이나 근처를 서성였다. 그러다 저녁 시간이 되어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왔던 길 그대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멀리 조명이 들어온 에펠탑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센강을 건너 시내 중심부를 반시계 방향으로 크게 돌아 숙소에 돌아왔다.


퐁뇌프 다리 위에서


퐁 뇌프 다리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


개선문


멀리 보이는 에펠탑


숙소 근처 다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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