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그림을 잘 모른다. 한국에 있을 때도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여행 중 방문했던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이때 아니면 언제 와보겠나 하는 마음에 파리에서 유명한 곳들을 찾다 보니 오르세 미술관까지 오게 된 것이다. 원래 대충 둘러보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이 미술관의 그림들은 무심하게 지나가려는 이를 불러 세워 유심히 관찰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내 눈이 속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흰색과 검은색 물감을 대충 버무려 종이 위에 뭉개듯 칠해놓았을 뿐인데, 내 눈이 그걸 보며 짙은 먹구름 아래 바닷가로 몰아치고 있는 거센 파도를 떠올리고 있었다. 바닷가에 작게 그려놓은 사람들, 화가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자세하게 그릴 필요가 없었다. 그 희미하게 보이는 실루엣 중 하나를 골라 몸에서 머리로 굵은 선 하나를 연결하니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머리를 짚고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옆에 서있는 사람의 한쪽 하반신에만 치마를 그려 넣자 그림 안에서 사나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멀리 언덕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에게까지 바닷물이 날아올 정도였다.
한 그림 앞에서는 따뜻한 오후의 햇빛 아래 허리까지 올라오는 수풀 옆으로 난 한적한 길을 걸어볼 수 있었다. 언덕 아래로 펼쳐진 넓은 평원의 한가운데에 내가 가야 할 마을이 멀리 희미하게 보였는데, 한참을 걸어야 했지만 딱히 할 것도 없고 날씨도 좋아 콧노래를 부르며 산책하듯 천천히 걸었다.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키를 잡고 있는 어부는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있었다. 높게 출렁대는 청록빛 파도는 아름다우면서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는데 이 어부는 어떻게 그리 무뚝뚝한 표정으로 앞만 보고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만약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더라면 배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 난간을 한 손으로 꽉 움켜쥔 채 다른 한 손으로 간신히 키를 잡고, 두려움으로 일그러진 얼굴의 눈은 반쯤 감긴 상태에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따금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아후"하며 내지르는 탄식도 눈썰미가 좋은 화가라면 잡아냈을 것이다.
그림들 중에는 분무기로 물감을 뿌린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노을로 물들어가는 노트르담 성당 주변의 모습은 어떻게 처리를 한 건지는 모르지만 아주 작은 점들로 색이 칠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약간 흐릿했지만 희한하게도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린 시절 학교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면 직선을 그리는 게 가장 힘들었다. 붓이건 연필이건 직선을 그리려고 하면 가다가 손이 덜덜 떨려서 위아래로 요동치는 선이 그려지곤 했었는데, 그래서 미술은 나하고 맞지 않다고 결정을 내리고 일찌감치 포기를 했었다. 직선은 힘들지만 점선으로는 그릴 수 있는데, 이렇게 직선 대신 점들을 찍어 그린듯한 그림을 보며 그때 미술을 너무 일찍 포기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