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왔는데 베르사유 궁전을 안 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고급스러움과 세련됨, 낭만과 우아함 그 자체였다. 베르사유 궁전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몽파르나스 역으로 향했다. 파리 근교에 있는 베르사유로 가려면 기차를 타야 했다. 열차 안에는 자리가 많았지만 혹시 역을 지나치기라도 할까 봐 회사에 출근할 때와 같이 문 바로 앞에 서서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이른 아침 베르사유의 거리는 한산했다. 도로를 따라 사람들이 몇 명씩 무리를 지어 걷고 있었는데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사람들과 섞여 십분 남짓 걷고 나서 마침내 베르사유 궁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서둘러 온 건데 궁전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궁전의 정문 앞까지 갈 수 있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커다란 정문과 담장이 전부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아침의 햇빛을 머금어 은은한 빛을 내는 그 고급스러운 노란색을 사람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번쩍이는 첫인상답게 궁전 안의 모든 것들이 화려하게 장식돼 있었다. 황금으로 하도 많이 덮여 있다 보니 이것이 정말 황금이 맞나 싶을 정도였는데, 사실 황금보다도 내 눈길을 더 사로잡은 건 천장이었다. 궁전의 모든 방과 복도의 천장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어디에서건 눈을 들어 위를 올려다보는 순간 그 즉시 천상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천장에 그리는 게 목도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 이 넓은 궁전의 모든 천장이 조금의 빈 곳도 없이 빼곡하게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대단했다.
궁전 안을 다 돌아보고 뒤편의 정원으로 나갔다. 정원이라고는 하지만 보트를 띄울 수 있는 운하까지 있는 거대한 공원이었다. 운하 주위는 울창한 숲이 감싸고 있었는데, 산책로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숲 한가운데로 난 길을 걸으면 궁전의 정원이 아닌 어느 시골의 산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정원 안에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조성한 자그마한 시골 마을도 있었다. 작은 호수 옆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 중 하나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금발의 근육질 남자가 일을 하러 나오며 참하게 생긴 아내와 포옹을 할 것만 같았는데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골 마을 근처의 그랑 트리아농과 프티 트리아농은 꽃과 나무들이 다른 곳에 비해 더 섬세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왕비들이 주로 생활하던 곳이라고 하던데 여인의 손길이 닿았던 장소들이어서 그런지 금으로 만든 번쩍이는 장식이 없어도 곳곳에 배어있는 은은한 아름다움과 기품이 오히려 더 돋보이게 하고 마음을 설레게 했다.
오후 늦게까지 정원 곳곳을 돌아다녔다. 이 날 날씨도 약간 더웠는데 하루 종일 걸어서 그런지 몸이 약간 무겁게 느껴졌다. 궁전 앞의 황금문을 향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