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행 버스를 놓치다

by 히다이드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근처 슈퍼마켓에서 물과 약간의 간식을 사면서 러시아 동전을 최대한 없앴다. 한 움큼이나 되는 동전들을 몇 달 동안 가지고 다닐 수는 없었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햇빛이 눈부시게 빛나고 약간 차가운 바람도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캐리어 가방이 내는 드르륵 소리까지 리듬을 타고 있었다.


유럽행 버스를 타는 곳은 앞으로 계속 걸어서 운하 3 개를 건너면 나오는 오른편 블록의 끝에 있었다. 아침에 구글 지도로 내가 갈 길을 확인하면서 3번째 다리를 건너면 반원형의 작은 녹지가 나온다는 것을 파악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다리 2 개를 건너고 나온 사거리에서 오른편에 번화가가 보이자 방향을 틀어 번화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국경을 지나는 버스인데 큰 터미널에서 타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번화한 곳에서 터미널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앞으로 한 블록을 더 가고 오른쪽으로 가나 먼저 오른쪽으로 간 다음에 앞으로 한 블록을 가나 마찬가지인데 3일 동안 못 가봤던 곳을 보고 싶기도 했다.


처음에 사거리에서 번화가 중심에 커다란 건물이 있는 것을 봤을 때 우리나라 서울역이 떠오르면서 그게 터미널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 가서 보니 일반 쇼핑몰이었다. 계속 걷다 보면 버스 터미널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걸어도 터미널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블록의 끝까지 갔는데도 터미널이 안 보여서 옆을 지나가던 아주머니를 붙잡고 지도를 보여줬다. 아주머니가 거기가 아니고 한 블록을 더 가야 한다고 손짓으로 알려줬는데 뭔가에 홀려있던 머리가 그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리를 하나 덜 건너고 오른쪽 끝까지 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고 나서 다시 지도를 들여다봤는데 내가 버스를 타야 할 곳은 앞으로 한 블록만 더 가면 되지만 운하가 길을 막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다리로 돌아서 가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나 촉박했다. 내가 어쩔 줄 몰라하는 걸 보고 아주머니가 날 안심시켜 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주머니에게 인사도 안 하고 캐리어 가방을 끌고 뛰기 시작했다. 눈물이 나왔다. 바보 같은 실수를 했다는 게 견딜 수 없었고 버스를 놓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두려웠다. 달리는 중에 이미 버스 출발 시간이 지났지만 10 분 정도는 기다려 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죽도록 뛰었다.


요란한 소리로 캐리어 가방을 끌면서 뛰는 모습을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그걸 의식할 겨를이 없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도록 뛰는데 그때 하필 슈퍼마켓에서 산 1.5 리터 생수병들이 담겨있던 비닐봉지가 찢어졌다. 비닐봉지의 비닐이 너무 얇았다.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물병들을 주워 담는데 화낼 시간도 없었다. 물병들을 찢어진 비닐봉지에 담을 수는 없어서 가슴에 품고 뛰었다. 버스 정류장이 보이기 시작할 때 시계를 보니 출발시간이 20 분이나 지난 후였다. 멀리 노란색 버스 한 대가 멈춰서는 게 보여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려가 봤지만 역시 아니었다.


허리를 숙이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데 바보처럼 또 눈물이 나왔다. 정류장에는 도로 표지판처럼 생긴 간판만 하나 세워져 있었다. 국가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버스가 그런 곳에서 정차할 줄은 몰랐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말도 안 통하고 당장 잘 곳도 없는 지구 반대편에서 어떻게든 교통편을 구해 폴란드까지 가야 했다. 다음날 밤은 바르샤바의 숙소에서 자려고 예약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마음을 추스르고 일단 버스를 운영하는 ‘에코라인’ 사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작은 버스로 된 사무실은 문이 잠겨 있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직원들이 언제 올지 모르고 직원들 역시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주변을 서성거리다 근처에 있는 맥도널드 매장에 들어가기로 했다. 인터넷을 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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