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개혁 500 주년

by 히다이드

회사에 다니면서 동료들에게 절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는 것은 물론이고 술, 담배도 안 하는 데다 월급의 십 분의 일을 교회에 내기까지 하니 특이해 보였던 것이다. 맞다. 어쩌면 나는 그 사람들이 말한 대로 절실한 기독교인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부터 온 가족이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교회의 문화가 나한테는 굉장히 익숙하다. 특히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는데,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한테 익숙했던 모든 걸 끊어버리고 싶었다. 현지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도 모르고 내가 머무는 곳에 교회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어렵게 간 여행지에서 교회를 찾아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여행 스케줄을 짤 때 교회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일요일에도 평일과 똑같이 움직이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러시아를 가로질러 유럽으로 간다는 말을 들은 목사님 한 분께서 현지 교회의 상황을 알아보고 여행 갔다 와서 자기한테도 얘기해 달라고 하시면서 살짝 고민되기 시작했다. 일요일에 교회 안 갈 수도 있다는 말을 넌지시 했는데, 에이 농담하지 말라고 하시는 걸 보며 그래도 일요일에 교회는 가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매주 가는 건 어렵겠지만 시간 될 때 몇 군데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방문지에 있는 한인 교회들을 알아보는데, 인터넷을 뒤지던 중 우연히 한 뉴스를 통해 2017 년이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정확히 500 주년이 되는 해라는 걸 알게 됐다. 뉴스를 읽으면서 독일에 가면 비텐베르크에 있는 마르틴 루터가 95 개조 반박문을 붙였던 교회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에 그 교회를 방문해 500 년 전 종교개혁이 시작된 현장에서 예배를 드린다면 그보다 더 멋진 일은 없었다. 독일 여기저기에 있는 마르틴 루터의 흔적들을 방문지 목록에 적다 보니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는 종교 개혁의 흔적들을 찾아보고 싶어 졌다. 특히 종교 개혁의 중심에 있던 교회들, 위대한 개신교 지도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고 싶었다. 여유 있게 휴식을 취하다 오자는 취지로 시작한 여행이었는데, 매주 일요일마다 현지인들이 다니는 개신교회를 방문해 종교 개혁 후 500 년이 지난 오늘날의 유럽 개신교회 모습을 확인하자는 다소 거창한 목표가 더해졌다. 한국인들이 다니는 교회는 한국에서도 많이 봤기 때문에 유럽 현지에서까지 따로 시간을 내어 방문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 훨씬 더 힘들어졌다. 역사를 공부해야 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야 어디를 방문할지 정할 수 있었다. 종교 개혁 시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17세기, 18세기의 유명한 개신교 교회 지도자들의 개인사를 조사했다. 방문하는 도시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교회가 없으면 인터넷을 뒤져서 현지에 있는 개신교 교회를 찾아냈다. 아무 교회나 갈 수는 없고 내가 가진 신앙과 같은 교리를 가진 교회를 찾아야 했는데, 교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사진이나 활동 내역, 교회 역사와 소개 등을 보며 내가 가도 되는 교회인지를 확인했다. 한국어를 지원하는 사이트가 없는 건 당연하고 영어를 지원하지 않는 사이트도 많아서 홈페이지에 게시된 내용만으로 어떤 교회인지 판단하는 게 어려웠다. 우선 교회 이름에 복음이나 침례, 개신교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교회를 찾고 살면서 배운 영어 실력을 총동원해 열심히 영문 독해를 했다. 아무리 독해를 해도 도저히 내용 파악이 안 되면 과감하게 다른 교회를 알아봤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사진들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이면 안심이 됐다. 루터와 같이 내가 들어본 유명한 개신교 지도자에 대해 소개하고 있고, 종교 개혁 500 주년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 믿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실수로 개신교 신자가 가면 안 되는 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도 있었는데 사실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어차피 나는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는 데다가 한 번 스쳐 지나가는 방문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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