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내내 걸어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도착했다. 이곳의 그림들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모든 게 너무나 구체적이고 생생했다.
제방이 무너져 홍수가 나는 바람에 필요한 살림살이만 챙겨 피난을 가는 중세 사람들의 모습은 오늘날 뉴스에서 보는 장면과 차이가 없었다. 누가 데려다주지 않아도 알아서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가축들의 센스도 마찬가지였다.
중세의 한 시장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던 남자는 자기 등 뒤에서 아내가 째려보고 있는 걸 아는 눈치였다. 그날 밤에 아내한테 한 소리를 들으면서도 넉살 좋게 웃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꽁꽁 얼어붙은 강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스케이트 대회를 열던 모습도 기억난다. 구경하는 사람들 뒤에서 한 숙녀가 긴치마에 코트를 입고, 머리에는 챙 달린 모자까지 쓴 채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는데 균형도 못 잡고 기우뚱하는 모습이 처음 타보는 것처럼 보였다.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자기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승선에 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했을지도 모르겠다.
난파당해 해안까지 떠밀려온 배에서 사람들을 구해내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북해의 구름 사이로 잠깐 동안 해가 모습을 드러내 사람들을 비추고 있었지만, 파도는 여전히 사나워 보였고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고 있는지 나도 느껴질 정도였다. 물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구하라고 자연이 잠깐 동안 시간을 준 것 같았다.
바닷가에서 어린 동생들과 놀고 있던 소년의 모습도 잊지 못하겠다. 한 아이를 업고 다른 여동생 두 명이랑 같이 바닷물에 띄워놓은 작은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만든 것 같았다. 나무를 직접 깎아서 배를 만들고 천으로 돛까지 만들어 달아 놨으니 정말 엄청난 공을 들인 작품이었다. 물에 잘 떠 있는 걸 보면 타고난 재능이 있는 거 같았다. 나중에 커서 배를 만드는 일이나 목수 같은 뭔가를 만드는 일을 했을 것 같다. 흰 천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는 여자 아이들의 모습은 너무나 귀여웠다. 자기들의 모습을 먼 훗날 지구 반대편에서 온 한 남자가 보게 될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 자기들의 모습을 그려주는 게 부끄러워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을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화가를 응시하고 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얼굴을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네에 있는 화가가 자기를 그려준다기에 호기심 어린 눈으로 힐끗 쳐다보고 말았을 게 분명하다. 화가 자신도 자기가 그림으로 남긴 장면이 훗날 박물관에 걸리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림들을 감상하며 몇 백 년 전 그 장소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함께 사람들을 지켜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