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여학생

by 히다이드

네덜란드 튤립의 진수를 감상하기 위해 큐켄호프에 가기로 했다. 매년 3월부터 5월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튤립 축제인 큐켄호프가 열린다는 걸 미리 알고 간 것은 아닌데, 숙소에서 튤립을 즐길 수 있는 명소를 찾다 보니 마침 내가 머무는 기간에도 축제를 하고 있었다. 축제 일정과 가는 방법을 알아보며 뭔가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큐켄호프는 '리세'라는 도시 근교에서 열리고 있었다. 리세 인근의 라이덴까지 기차를 타고 간 후에 다시 버스를 타고 큐켄호프 행사장까지 갈 생각이었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아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암스테르담 중앙역까지 걸어가면서 다음날 아침까지 먹을 빵과 음식을 미리 사놓기로 했는데, 이곳의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다 보니 하루 종일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슈퍼마켓에서 장 보는 것을 놓칠 수 있었다. 마침 근처에 슈퍼마켓이 있어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런저런 음식들을 골라서 계산대로 가져갔는데 한 여학생이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주머니에 있던 동전들을 끄집어냈는데 여학생 손바닥 위에 동전들을 올려놓는 게 왠지 부담스러웠다. 손가락이 살짝 닿기라도 하면 실례일 것 같아서 동전들을 계산대 위에 조심스레 내려놨는데, 여학생은 무표정한 얼굴로 내가 내려놓은 동전들을 쓸어 담아 금고에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서 나한테 거스름돈을 주는데, 나한테 줄 동전들을 계산대 위에 흩뿌려 버렸다. 깜짝 놀라서 여학생의 얼굴을 봤는데 여학생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음 손님의 물건을 계산하고 있었다.


계산대 위에 뿌려진 동전들을 줍는데 마치 내가 거지가 된 느낌이었다. 손님한테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는데 문득 이 여학생도 계산대 위의 동전들을 쓸어 담으며 똑같은 불쾌감을 느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여학생에게 동전을 줄 때는 손 위에 동전을 올려놓는 것을 상대방이 불편해한다고 느꼈었다. 문화의 차이인 것 같았다. 조용히 동전들을 주워 담아서 슈퍼마켓을 나왔다. 그 뒤부터 여행 중에 물건을 사고 동전을 낼 일이 있으면 손이 살짝 닿더라도 항상 상대방의 손바닥 위에 동전들을 올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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