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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Oct 05. 2018

가끔은 기본기를 점검하는 이유

연구자로서 합리적 의심을 가질 필요성

회사 들어와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매니징하던 꼬꼬마 리더 시절의 이야기.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의 기본 개념은 어떤 물질을 세포에 처리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세포의 반응성을 보는 것이다. 그 결과로 어떤 물질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 어떤 농도에서 효과가 나오는지 등을 판단한다. 이런 실험을 할 때 보통 시험물질과 별개로 표준물질 (양성/음성 대조군이라고 부르는)을 포함시킨다. 전체적으로 실험이 잘 되었는지를 판단하기 위함이다. 

실험을 다 마치고 나면 보통 눈으로 봐서 큰 차이를 알 수는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단백질이나 DNA, RNA 등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 변화를 인지하기 위해 평가 시약을 쓴다. 그걸 처리하면 어떤 경우는 눈으로 직접 차이를 볼 수도 있고, 분광 광도계라고 부르는 기기를 이용해 특정한 값 (수치)을 얻는다. 값을 얻게 되면 이것을 다시 해석하는 과정이 있다. 보통 엑셀을 이용해서 계산을 한다. 그런데 워낙 정형화되고 반복되는 실험을 하다보니 예전에 쓰던 엑셀 파일을 열어 이번 실험에서 얻은 값을 복붙해서 쉽게 최종 값, 필요에 따라 그래프를 얻곤 한다. 


이 과정에 오류가 있었던 사례다. 

같이 일하던 연구원의 실험 결과를 받아보니 분광계로 얻은 값과 최종 결과 그래프 사이에 뭔가 맞지 않는다는 기분이 자꾸 들었다. 별로 차이가 안나는 값인데 그래프에서는 엄청 차이가 있다거나 또는 그 반대의 경우가 종종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raw data라고 부르는, 가공하지 않은 최초 결과를 같이 달라고 해서 따로 분석해봤다. 

이유를 찾았다. 간단히 말하면 습관적인 복사-붙이기로 인해 오류가 생긴 것이다. 분광계를 통해 얻은 수치는 그냥 숫자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 그걸 농도로 변환시켜야 하며 그 때 standard curve라는 것을 이용한다. 그런데 분광계 값이 standard curve의 신뢰성 있는 구간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 값을 해석하는데 무리가 있다. 말 그대로 'standard' 이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standard curve에 맞추기 위해 시료를 희석 또는 농축해야 한다. 

이 연구원은 그 부분을 간과한 채 과거의 엑셀파일에 값만 넣고 결과 그래프를 얻었던 것이다. 그러니 값과 최종 결과 사이에 뭔가 잘 맞지 않는 그림이 나왔던 것이다. 그 이후 한 동안 raw data를 함께 보며 결과를 해석하는 단계를 밟았음은 물론이다. 경력이 많은 연구원일지라도 루틴한 업무에서 집중하지 않으면 위와 같은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예전에 참 한 성격해서 정말 X랄 맞은 선배가 있었다. 그랬던 그에게서 유일하게 배운 점은 '원리'를 알고 결과를 분석하는 태도였다. 위에 소개한 나의 경험도 결국은 기본적인 원리에서 출발한 문제다.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원을 나온 사람들도 종종 이런 오류를 범한다. 가끔 '원래 그렇게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의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왜 결과가 안나오지? 하고 실험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결과 해석에도 많은 공을 들여야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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