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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May 21. 2020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 보자

조선왕조실록을 읽어 본 적은 없지만 그 내용이 방대하고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세세하게 잘 적었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덕분에 조선 시대를 살지는 않았어도 왕의 생활과 생각이 어땠는지 알게 된다. 기록을 남겨두는 것은 다음 사람에게 재산이 된다. Documentation의 중요성은 강조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싱가포르로 발령 받기 전에 하던 일은 익숙하고 늘 하던 것이었다. 분야가 좀 다르긴 하더라도 기본 배경지식은 큰 차이가 없었다. 조직이나 협업의 상대와 같은 대상에 대한 적응의 시간은 많이 필요했지만 적어도 '직무' (미션)에 대한 학습이나 지침은 받지 않아도 되었다. 한국에서의 업무, 직무도 오랜 시간 익숙해져서 그랬던 것이지 문서화된 매뉴얼은 없었다. 그저 경험으로 배우는 것이다. 우리 조직은 이런 일을 하는 곳이고, 누구와 협업을 하게 되며, 어떤 자세로 임하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한 모든 것은 경험과 눈치로 얻을 수 있었다. 앞서 말한 것들을 정리한 간단한 가이드라도 제공하였다면 신입 또는 새롭게 합류한 동료들이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일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싱가포르에 왔을 때 전임자와 딱 하루 업무 인수인계를 진행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고 내 위에 팀장도 있었기 때문에 그리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더 상세한 인수인계 과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에게 지난 공동연구의 계약서, 중간 보고서 등을 남겨주었다. 다른 것들은 다 말로 해주었다.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막상 일을 해보니 실무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Fact를 알고 있었고 상사에게 보고가 되었었지만 문서로 남겨두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았다. 경험과 노하우라는 허울로 덮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보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떠나거나 없어지면 어떻게 행간의 숨은 의미를 찾아낼 것인가? 


나는 올 해 여기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후임이 누군가로 결정된 것은 없다. 후임이 누가 되었든 그에게 필요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가려고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후임이 당장 없다고 해도 남겨두려고 한다. 내가 잘 나서도 아니고 엄청난 의무감이 있어서도 아니다. 싱가포르에서 이런 일들은 어떻게 하면 된다,라는 매뉴얼이 있다면 적어도 나처럼 처음 얼마 동안 헤매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상세하게 적고 있다. 행간을 해석해야함 찾을 수 있도록 비밀스런 문서가 아니라 정직하고 업무 이해에 도움이 되는 매뉴얼을 만드는 중이다. 


-업무 정의

-업무의 진행 방법 (Work Flow)

-의사 결정은 누가, 어떻게 하는지

-소통은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하면 되는지

-지난 몇 년간의 MBO는 어떻게 작성했었는지

-그 동안 만났던 또는 검토했던 협력사례 


매뉴얼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는데 위와 같은 수준으로 기록을 남겨둔다면 초심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아직까지 우리는 부딪히면서 배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인정한다. 현실에서 업무 수행은 경험이 큰 재산이니까, 그 재산을 문서화해서 남겨두면 조금이라도 진보된 방향으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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