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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May 16. 2018

개발자로서 믿음을 가질 필요성

회사 연구원을 위한 조언

예전에 뉴스에서 잊을만 하면 만나는 제목이 있었다. 

'드디어 암 정복 가능해지는가'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 어떤 연구진이 오랜 연구 끝에 암 세포의 분열을 조절하거나 영향을 주는 인자 하나를 찾았으리라 생각된다. 통제된 실험 조건 하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했을 때 유의미한 결과를 나타냈을 것이다. 사실 신약개발을 위해 유효한 분자 타겟을 잘 찾는 일이 참 쉽지 않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왜 몇 년 지나서 '새로운 항암제 개발의 길 열려' 라던가 '이제 곧 암 치유할 수 있어' 라는 등의 비슷한 뉴스가 계속 나올까? 오랫동안 바이오 분야를 전공하고 회사 일을 하는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 답은 간단하다. 생명 현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무책임한 발언인가). 


조금 대책없는 답변 같지만 실제로 그렇다. 생명현상의 기본적인 반응은 특정 상황을 야기하는 신호물질-수용체-수용체를 통한 세포 내 신호의 증폭 과정에서 일어난다. 만약 어떤 특정한 신호를 막으면 그 신호와 연결된 세포 내부의 반응은 완전히 멈추게 될까? 보통 그렇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구성되었는지 몰라도 세포 내 신호는 이것 저것이 매우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A라는 신호를 막아도 어딘가에서 연결된 B라는 경로가 이를 보완/보상해주는 일을 벌인다. 이로 인해 완전한 shutdown이 불가능 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반응 (side effect)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늘 내가 할 일이 남아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대표적인 세포 내 신호전달의 관계도


이런 현상은 재미있고 연구의 가치가 있지만 회사 연구개발 시에는 문제가 된다. 

특히 어떤 물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늘 챌린지를 받는다. 이 물질로 내가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지만 과연 '충분하게' 얻을 수 있는지 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가 하는 일은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 즉 신약과 같은 강력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 고민을 다루고 해결하려는 영역이다. 


그렇지만 경영진은 명쾌한 답변을 좋아한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에피소드가 있다. 주니어 시절, 특정 분자타겟의 저해제를 개발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사업부장님의 질문. 


"와, 그거 좋아 보이네. 그러면 이제 기미 고민을 100% 해결할 수 있는거야?"


음.. 나는 이 분야를 연구하면서 단 한번도 100% 해결을 예상해 본 적이 없었다. 다양한 가능성 중에 어떤 의미 있는 타겟을 찾았고,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소재를 발견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품을 개발하는 입장에선 조금 다른 질문을 고민한다. 

이번에 개발한 그 물질을 사용하면 고객들의 피부 고민이 (완전히) 해결되나요? 

새로운 경로를 찾았다고 하는데 그러면 이제 anti-aging 효과가 기존보다 탁월해 지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곤란하다. 연구자로서의 의심은 있을지언정 개발자로서의 믿음은 가져야 한다. 

사실 그런 믿음이 없으면 스스로도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 합리적 의심과 질문은 계속 되어야 한다. 

연구의 시작은 계속되는 질문 속에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답을 해야 할 때 모호함은 잠시 내려둔다. 위에서 예를 들었던 사업부장님의 질문 의도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당신의 연구내용에 대해 다른 사람을 설득할 정도로 강한 믿음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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