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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관리의 본질은 사람이다

by nay

처음 연구소에 들어왔더니 식스시그마라는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입사하기 전 1년 전 정도부터 새롭게 일하는 방식의 하나로 도입한 제도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신입이니까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다. 대학원에서 배웠던 연구 방법과 달랐지만 회사는 이런 곳인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겼었다.


3-4년 정도 뒤에는 트리즈라는 기법으로 일하자는 구호가 올라갔다. 1-2년 정도 했는데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 한참 뒤에는 소위 Cross-functional Team/Task force 개념으로 일하는 문화를 시도했었다. 이 방식도 4-5년 정도 꽤 공을 들였더랬는데 마찬가지로 뿌리를 내리지는 못했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진화하며, 경영 기법 또한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다. 회사는 살아 있는 생물과도 같아서 바뀌지 않으면 도태되기 쉽다. 그러니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신을 세우고, 이전과 다른 기법을 부단히 도입한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의 의미는 명확하다. 기존 방식이 올바르지 않았다거나, 지금이 유효하더라도 계속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제도의 시행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라는 건 결국 문화를 바꾸는 건데, 문화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과 연동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업력이 오래되고 구성원 중 고연차가 많으면 저항감은 더더욱 높을 수밖에 없다. 앞서 내가 신입사원 때부터 경험했던 몇 가지 변화의 시도가 어떻게 시작되고 유지되고 끝났는지를 체험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만둘 것’이라는 기시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다.


기획과 전략 부서에서 일하다 보니, 지금 연구소의 수장들의 생각을 엿볼 기회가 많다. 그들의 한결같은 생각은 ‘(내가 있는 한) 현재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일하는 방식을 정착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점이다. 다만 그들의 생각은 훨씬 추상적이고 이상적이기 때문에 현실 버전으로 번역 내지는 해석하는 노력이 나와 동료들의 몫이 된다.


어제도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일을 처리하는데, ‘명확한 메시지를 만드는 과정’과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적합한 논리의 흐름’에 대해 긴 시간 회의를 했다. 현업에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뭣이 중한데라고 생각하던가, 코웃음 칠 일이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문화(생각과 행동)를 바꾸고자 하는’ 목적이다 보니, 비전, 미션, 정책, 메시지 등이 제대로 연결되어야 한다.


변화 관리를 주도하는 부서와 사람이 새겨야 할 것을 정리해 봤다.

-복잡성을 가급적 줄이는 운영 제도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은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의미와 문구 (위와 마찬가지)

-약간의 변주는 되더라도 일관적인 운영 방침 (일관성 없이 왔다 갔다 하면 믿지 않는다)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던지는 메시지 (위와 마찬가지)


여기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생각이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떠오르는 표현은 치밀함, 주도면밀함, 그리고 상대에 대한 배려이다. 치밀함과 주도면밀함이란, 업무를 구조화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디테일까지 설계해야 함을 말한다. 보통 큰 틀만 있으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 든다. 준비하는 입장에서도 그게 편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무엇보다 일하는 것을 바꾸는 이유가 ‘나 좋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걸 받아들일 상대에게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도를 만들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이유는 결국 사람을 움직이기 위함이다. 화려한 계획보다 중요한 건 실제 구성원들이 변화를 체감하고 행동하도록 만드는 일상의 세부적인 실천이다. 어쩌면 변화의 성공 여부는 그 세심한 설계와 진정성 있는 실행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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