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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자유 07화

한 사람의 계절

by 앙티브 Antibes

https://brunch.co.kr/@juanlespins/343

어제 발행한 글의 형제/자매 글입니다.




'좋아요'가 많은 날의 사진만 보고그 사람을 다 알았다고 말하지 말자.

필터는 밝고, 마음은 종종 흐리다.


지하철이 멈추고
예매한 티켓 QR이 먹통이 되는 오후,
갑자기 비가 기습처럼 쏟아져
신발 속까지 젖는 그때,
그가 고개를 드는지, 한 발 물러서는지
그 순간 바람의 성질이 드러난다.


커피값을 이체하는 짧은 진동,
먼저 내민 카드 한 장,
“천천히 갚아”라는 말보다
더 빨리 도착하는 건 믿음이다.
작은 배려가 먼저 내려앉아
보이지 않는 흙을 단단히 만든다.


회의실 공기가 뜨거워지고
단체 대화방에 말풍선이 폭죽처럼 터질 때,
다음 문장이 폭발인지 숨 고르기인지
점 세 개의 정적이 방향을 정한다.


함께 사는 하루들은
알람을 끄는 손짓,
빨래를 널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발자국,
현관 비밀번호를 공유한 저녁들로 쌓인다.
그 반복이 루틴이라는 강을 만들고,
그 강이 잔잔히 식탁 아래를 지나갈지
장마처럼 문턱을 넘을지는
싱크대 물자국과 달력의 작은 점들이 알려준다.


사람은 한 계절이 아니다.
미세먼지 수치와 체감온도,
폭염주의보와 소나기 알림,
늦서리 같은 침묵과
갑작스런 해제처럼 찾아오는 웃음
모두가 한 해의 날씨를 이룬다.


그 모든 날씨를,
알림이 아닌 맨살로 겪고 나서야
조용히 말할 수 있다.

맑음의 가장자리와
비 뒤에 남은 냄새,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눕는 티슈 한 장의 떨림까지
“이제야, 너를 안다.”

그리고 늦게 깨닫는다.
너의 하늘을 배우는 동안
내 하늘의 색도 조금 바뀌었다는 걸.






맑은 날만 보고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지 마라

길 위에서 구름이 몰려오고
버스가 멈추고, 표가 사라질 때
그가 고개를 드는지, 주저앉는지
그제야 바람의 결이 보인다


동전 몇 닢이
손끝을 건널 때
무게보다 깊이 묻히는 건
신뢰라는 이름의 씨앗


분노의 불씨가
눈빛에 번질 때
그 불이 집을 태울지
손바닥으로 덮을지
침묵이 말해준다


함께 사는 하루들은
작은 물방울처럼 모여
습관이라는 강을 만든다
그 강이 잔잔히 흐르는지
폭우로 불어나는지
그때서야 알게 된다


사람은 하나의 계절이 아니다
햇살과 비, 바람과 폭풍을
모두 품은 한 해의 날씨다

그 모든 날씨를 견딘 뒤에야
비로소 말할 수 있다
“그래, 이제 그 사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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