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전 화성돈을 두리번거렸을 조선인 외교관 가족을 상상하며
나름 긴장되었던 첫 미국 국내 여행을 무사히 마친 기쁨으로 오늘은 주말을 푹 누렸다.
세 편으로 엮으려는 워싱턴 여행기는 기억이 흐릿해지고 귀찮아지기 전 빨리빨리 써서 마무리하려 한다.
더 아메리칸 인디언 국립박물관 (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Old Korean Legation in Washington D.C.)
국립 흑인 역사 문화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
첫 미국 여행지를 D.C.로 정한 것에는 워싱턴이 수도니 안전하리라는 겁쟁이 쫄보의 믿음, 역사적인 대선을 앞두고 백악관 한번 직접 보겠다는 호기로움, 그리고 이곳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에 가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딱 삼분의 일씩을 차지했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이런 곳이 워싱턴에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뿐 어떤 곳인지는 자세히 몰랐다. 그저 가까이에 역사적 장소가 있고, 잘 운영되고 있다면 꼭 한번 가보아야겠다는 마음만 있었을 뿐.
공사관은 백악관과 박물관들이 모인 관광 중심지와는 조금 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 더 로컬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동네였다. 맑은 날씨와 옛스러운 건물들의 미국스러움에 행복해 하며 구글 맵을 더듬거리는데, 먼곳에서 태극기 펄럭이는 건물을 보고 어쩐지 뭉클했다. 반사적인 애국심 같은 것은 아니고, 130년 전 미국 화성돈 땅이 세상 별천지 같았을 조선 사람들이 헤매고 헤매다 저 건물과 저 자리의 국기를 보면 얼마나 반갑고 마음이 놓였을까 괜스레 상상이 되어서였다.
30분이나 일찍 오는 바람에 건물 주위를 샅샅이 살펴 봤다. 바로 옆 건물과 외벽이며 포치며 쌍둥이처럼 똑같은 구조였고 로건 서클의 건물들 모두가 오래된 풍경을 간직한 듯 보였다. (나중에 들으니 로건 서클 전체에 유서 깊은 건물들이 많아서 워싱턴에서 역사 지구로 묶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예약된 3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닫혀 있던 현관문이 열리고,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시간 여행이 시작되었다. 투어는 약 1시간 정도, 강 소장님과 함께 1층부터 3층까지의 공간을 돌아보며 건물의 역사, 각 공간의 기능과 재현의 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정말 좋은 기회였다.
대한제국 공사관은 고종이 박정양을 초대 주미공사로 임명하고 화성돈에 보내 외교 업무를 보도록 했던 곳이다. 1889년부터 이 건물로 입주했고, 고종이 무려 25,000달러라는 거액을 들여 건물을 큰 맘먹고 구매했다. 처음에는 박정양, 이완용, 이하영 등의 공사관원들만 와서 활동하다가 미국 외교는 사교 행사에 부인과 대동하는 것이 관례임을 안 뒤 이후의 공사들은 가족까지 데려와 생활했다고 한다.
외교 행사도 따라다니고, 만국박람회도 참여하고, 사람들을 불러다 집에서 잔치도 열며 이곳에서 미국의 온갖 문물과 시스템을 본대로 들은 대로 상세히 기록하여 본국에 알렸다고 한다. 그렇게 발품을 팔며 외교 활동을 한 지 20년도 지나지 않아, 1905년 을사늑약이 이루어지자마자 공사관 기능이 멈추고 1910년 한일병합이 되자마자 고작 5불, 헐값에 팔아넘겨진 비운의 건물이다.
오래도록 기억에서 잊혀져 있었던 이 건물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2000년대 초 매입 이야기가 처음 나왔고, 10년 가까운 논의 끝에 2012년에야 건물을 사다가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해 2018년에 개관했다. 몇 달 전에는 미국의 국가사적지로 등재되는 경사도 있었다고 한다.
공간을 재현하기 위해 1층을 찍은 당시 사진, 가구 목록을 나열했던 역사 기록, 응접실이 짙은 초록빛이었다는 당시 미국 신문의 '한 줄'까지도 탈탈 털어서 활용되었다고 한다. 사진과 역사 기록을 긁어 모으고, 해외 골동품 시장과 옛 가구 상점을 들락거리며 공간 재현을 해 내는 이야기는 최지혜 교수의 '딜쿠샤' 이야기와 비슷했다. 올초 딜쿠샤 책을 읽고 공간에 방문하였던 경험이 있어서 그 노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전글 # 최지혜(2021),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
https://brunch.co.kr/@692f6103f2cf4b9/12
연구자로서 가장 관심 있게 보는 시대 또한 이 시기인지라 소장님의 설명을 한 줄도 놓치지 않았다. 그 덕에 집조(執照)라고 불리는 최초의 여권이라든지, 박정양이 보고서로 작성한 미속습유 등의 문헌들에 대해서도 새롭게 보고 알 수 있어 유익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설명은 1892년 워싱턴 지도. 무려 130년 전 만들어진 이 지도는 지금 워싱턴의 잘 구획된 도로와 백악관 근처의 랜드마크들을 거의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옛날 지도라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 지도에는 백악관 뒤 일자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 로건 서클에 KOREAN LEGATION과 국기가 선명하다.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130년 전 박정양 일행 눈에 비친 화성돈이나 지금 내 눈에 비치는 워싱턴이나 큰 차이가 없었으리라는 체감이 된다. 그가 아는 세계와 내가 아는 세계는 너무도 달랐는데 이곳에서 보는 풍경은 비슷하였으니 긴 시간이 한 줄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박정양은 입이 떡 벌어지게 높은 170m 워싱턴 기념탑과 눈처럼 새하얀 백악관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미국에 있으면 역사와 시간에 대한 체감이 다르다. 지금 내가 거주하는 보스턴만 하더라도 100년 전, 200년 전에 지어졌다는 건물들이 허다하고, 100년 전 사진 속에 나온 그 건물에서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잠을 자고 생활을 한다. 1890년 한양 도성과 지금 서울의 모습은 천지가 뒤집어지듯 다른 세상이니 100년에 대한 체감이 다를 수밖에.
그 옛날 대한제국의 어느 공사관 아내는 한복을 차려 입고서, 미국 대통령 부부와 한 번이라도 더 마주치겠다고 그들이 가는 교회에 따라다니며 꼭 그들의 뒷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그 부인의 눈에 비친 화성돈은 얼마나 낯설고도 대단해 보였을까. 집 안에 놓인 새하얀 변기와 밤새도록 반짝한 전깃불을 보고 모든 것 하나하나를 고국에 알려주고 싶어 얼마나 애가 탔을까. 인디언을 몰아내고 흑인들을 핍박하는 미국일지라도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대한제국이 배우고 따라가야 할 별세계 이상향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19세기 말 조선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나로서는 이번 방문에서 배우고 느낀 바가 컸다. 깨끗하고 반듯한 미국 수도의 어느 옛스러운 집에서, 이곳에서 자고 일어나며 보름마다 서쪽을 향해 절을 올렸을 어느 대한제국 외교관들을 생각하면서. 시간으로 엮인 공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을 관람하려면 꼭 홈페이지로 방문 예약을 해야 한다. 영어 해설과 한국어 해설이 각각 있고 마감이 비교적 빠른 듯하다. (평일의 경우 자유 관람은 11시, 영어 해설은 2시, 한국어 해설은 3시)
방문객에게 귀여운 엽서 기념품과 잘 정리된 안내 책자를 주는데 자본이 든든하게 받쳐주는 한국 관련 건물은 외국에서 처음이라 감동스러울 지경이었다.
홈페이지에서 층별 공간을 고화질 사진과 VR로 볼 수 있다. 투어 그대로 공간 설명도 자세하다.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홈페이지
https://oldkoreanlegati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