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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나 Dec 16. 2023

당신이 일기를 썼으면 좋겠습니다.

일상의 기록을 남기는 작가

  고백하건데, 일기는 매일써야하는 거라고 한다면 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 것과 다름 없었다.

뻔한 일기를 쓰지 말라고 가르치는 사람이었지만, 저 역시 있었던 일을 나열할 뿐, 나의 감정을 나에게서도 필터를 씌우는 모습을 보곤한다.

  

  

  그러던 언젠가, (이렇게 말하면 먼 과거의 이야기 같지만) 1년 전, 몇달간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해 누워만 있던 시간이 있었다. 그 때 밀린 드라마들을 보기 위해 N플릭스를 보려고 하면서도, 기분 좋고 싱그러운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를 찾곤 했다. 예를 들어, 에밀리가 파리에 간다거나, 그해 여름에 둘의 이야기 같은 일상의 소소함을 담으며 누구나 겪어볼만한 이야기들. 하지만 그 한마디 한마디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기분 좋은 드라마. 그렇게 사람과의 교류가 사라지며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을 내가 에밀리가 되고, 내가 다미가 되어 경험한 듯 했다.

  

  난 그들의 일상을 보았을 뿐인데,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나를 찾고 싶어지기도 했고 이 시간이 나 역시도 허구의 시간이길 바라는 마음이 살짝 생겼던 것도 같다. 그와 동시에 사람은 누구나 밝음 뒤에 어둠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어둠이 나에게도 살짝 머물고 있음을 느꼈다. 몸을 일으키게 되자마자 처음 한 것은 책상 앞에 앉는 일이었다. 그리고 펜을 들어 무엇인가 끄적이기 시작했다. 마음의 연료가 가득찬 덕에, 달려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머리가 어떤 생각을 적어가볼까?하고 고민도 하기 전에 나의 손은 펜을 들어 적어내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기록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만해도, 나의 일상을 체크하고 할 수 없지만 마치 일을 하는 사람처럼 리스트업을 한 채 삶을 살았다. 가장 여유로운 시기였을텐데 나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앉은 채로 3-4시간을 쓰고 나면, 어느새 해가 떠오르기도 하고, 아픈 골반이 더 아프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가운데 손가락이 다시 움푹 패어 가고 있었다. 아픔도 불편함도 잊을 수 있었던 건 '눈물'이 났기 때문이다.



눈물이 난 것이 어떤 의미인데?

  

 

   흘린 이유도, 그리고 그 흘린 눈물의 의미도 진짜 이유는 모른다. 그런데 그냥 눈물이 났다. '나'라는 사람을 내가 가장 모른다는 것을 깨달아서 인지, '나'라는 사람의 속마음이 가장 잘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인지, '나'라는 사람이 너무 짠했는지 어떤 이유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건, 울고 나서 미세먼지 가득했던 전날과 다르게 산들바람이 불어 멈춰있던 먼지들이 다 사라져 버리듯 쾌청했다. 그리고 신기하게, 웃고 있는 나를 보았다. 100% 성공하지 못해도, 특별한 일이 없어도 웃고 있고 다정하게 살고 있는 나. 내 기억 속 가장 깊은 곳에 묻기로 했던 가장 나다운 나. 그 친구가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삶을 살아가다 뒤돌아보았을 때 기억에 남는 것은 행동과 말보다 그 때의 [감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어릴적 어떤 이유였는지 명확하지 않아도 뇌리에 박힐만큼 화났던 감정과 슬펐던 일들을 기억이 여전히 선명한 것처럼 우리는 [감정]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뭐냐고 묻는다면 기록이라 말하고 싶어지는 요즘, 어쩌면 무탈한 하루가 정말 쓸 것이 없어서 나는 아침에 일어났다. 일어나서 밥을 먹었다. 와 같은 가장 하지 말하야하는 문장들로 도배가 되어있을지언정, 그 속의 나는 가득차있는 것이다. 너무 힘든 날 기록을 건너뛰었을 땐, 뿌연 안개같은 그날의 기억이 몇일 지나고서라도 기여코 기억해내서 쓰다보면 조금씩 초점이 맞춰지는 것처럼 말이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다가오고 있다는, 아주 선명한 오늘의 감각.

매일 조금씩 다른 하루를 사는 사람, 기록하며 기억하는 사람. 그렇게 우리는 내 인생의 작가가 된다.

- 마음쓰는 밤, 고수리

  

  

사진출처 : 작가의 기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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