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9
전날 밤, 마치 한여름 열대야처럼 끈적하고 더웠어.
에어컨을 켜도 눅눅한 기운은 쉬이 가시지 않았고, 뒤척이는 밤이 이어졌고.
아침엔 엄마도, 너도 모두 예민한 기운이 감돌았지.
간밤에 꿈을 꿨어.
익숙하지만 낯선 지하철 역에서 길을 잃는 꿈.
회사에 가야 하는데 지하철을 잘못 타거나, 익숙해 보여도 전혀 모르는 곳에서 내리게 되는…
어쩌면 반복되는 그 불안한 꿈. 꿈속의 엄마는 조급하고, 안개처럼 흐릿한 현실 속을 떠도는 느낌이었어.
그래서인지 유난히 피곤한 아침이었지.
엄마의 출근 시간이 이르다 보니 너도 자연스레 새벽같이 깨어나야 해.
그럼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일어나 준 너란 아이.
아침을 급히 챙겨주지만, 잘 먹어주어 항상 고마워,
엄마가 마음 편히 출근할 수 있도록 밥 먹는 모습을 보여주어 더 고맙단다.
신기하지. 내 배가 부른 것도 아닌데, 그저 네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든든해져.
그렇게 엄마는 출근하고 너는 학교를 갔지.
오후가 되어 일이 하나 생겼어. 하굣길에 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어.
전화를 받자마자 엉엉 울고 있는 너의 목소리가 들렸어.
순간, 뒤에서 울리는 삐용삐용하는 소리가 들려 심장이 철렁했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난 걸까.
단 몇 초 사이였지만 머릿속은 새하얘졌지.
다행히 다치거나 한 것은 아니었어.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렸고, 화면이 산산조각 났다고 속상하다고 엉엉 울고 있던 거였어.
그렇게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엉엉 우는 너를 나는 고작 목소리로만 달랠 수밖에 없었지.
엄마가 평소에 “핸드폰 망가지면 안 바꿔줄 거야! 잘 써야 해!” 하고 으름장 놓았던 거 사실이지만.
하지만 그런 건 다 마음에 없는 말이야.
핸드폰이 부서지든 망가지든 그게 뭐가 중요해.
너만 다치지 않고 무사하다면, 엄마는 그걸로 족해.
더 고마웠던 건, 함께 있던 친구가 엄마에게 직접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냈다는 것.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야.
그 친구도 그런 용기를 내기 시작했구나 싶어 기특하고 대견했어.
집에 돌아온 뒤, 너는 친구와 서로 사과를 주고받았다고 했지.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하고, 그 말을 “괜찮아”라고 받아주는 것.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오늘의 이 작은 사건은 그 자체로 커다란 성장이라고 느껴졌단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 자라나는 서라고 생각해.
키만 큰다고 자라는 건 아니니까.
오늘은 학원도, 운동도 모두 쉬었지.
이유야 어떻든, 쉼이 필요한 날이 있는 거야.
오늘 단 하루였지만, 마음속에는 참 많은 일들이 지나갔어.
울고, 놀라고, 고맙고, 다정하고.
오늘은 우리 일찍 잠자리에 들자.
꿈에서 엄마는 또 지하철을 헤매지 않기를.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괜찮은 하루이길.
딸 오늘도 수고했어.
내일은 틀림없이 멋진 날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