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손에서 시작된 이야기
벚꽃이 흩날리던 십여년 전의 어느 봄날,
아직 말도 서툴던 세 살 무렵의 아이와 나는 손을 꼭 잡고 길을 걸었다.
아이는 길 위의 돌멩이나 작은 꽃에도 자꾸만 눈을 빼앗겼고,
나는 그런 아이의 속도를 맞추느라 몇 걸음을 걷다 서기를 반복했다.
손을 잡고 걷는 그 시간이 다정하고도 느긋했다.
그날, 아이의 손을 꼭 쥐고 걸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내가 이 손을 잡아주고 있지만, 언젠가는 아이가 나의 손을 잡아주는 날이 오겠지."
그때는 그저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올지 모르는,
아주 멀고도 흐릿한 미래의 풍경.
당연히 그날이 오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내 손을 잡고는 까르르 웃으며 넘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걷던 작은 아이를 보며,
‘아이의 손’은 언제까지고 작고 따뜻할 거라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계절은 몇 번이고 지나갔다.
아이는 입을 떼고, 자전거를 배우고, 책을 읽고, 친구와 싸우고,
나를 미워하고 다시 사랑하기도 하면서 자라났다.
나는 늘 아이 곁에 있었지만, 동시에 매일 조금씩 아이에게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고, 그렇게 ‘손’이라는 연결 고리는 조금씩 잊혀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날, 지금의 중학교 3학년 아이는 내 키를 훌쩍 넘어서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불쑥, 아이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아무 말 없이. 자연스럽고도 조심스럽게. 마치 오래전 봄날을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아, 그날이 왔구나."
기다리지도, 예고되지도 않았지만.
정말로 아이가 내 손을 잡아주는 그런 날이 온 것이다.
아이의 손은 이제 더 이상 작고 보드랍지 않았다.
단단하고, 따뜻하고, 어딘가 듬직한 감촉이었다.
손을 잡은 채로 걷는 길 위에서 나는 세월의 무게를 느꼈고,
아이가 자라난 시간들을 한 장 한 장 되돌려보게 되었다.
가끔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 서글플 때가 있다.
언젠가 더 이상 아이가 내 손을 잡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순간 가슴이 시큰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이 짧은 순간이,
언젠가는 다시 그리운 기억이 되리라는 것도 안다.
우리는 지금도 함께 걸어가고 있다.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될 준비를 하고 있고,
나는 부모로서의 시간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
언젠가 아이는 자신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손을 놓고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서로의 길을 응원하며.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있고, 아이도 내 손을 잡아주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손’이 되어주는 그런 25년도의 한 여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