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가 그리운 날이 있겠지.

by dreamer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엄마가 되니

엄마가 더 자주 생각난다.

그리고 엄마가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힘들 때마다 엄마를 찾는다.

아이가 아플 때, 내가 아플 때, 마음이 허물어질 것 같은 날,

어김없이 나는 엄마를 부른다.

그러면 엄마는 늘 거기 있다. 내 옆에.

내 마음보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


우리 엄마도 엄마가 있었잖아.

그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떠올린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다.

엄마에게도 기댈 품이 있었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어깨가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외할머니라고 부르지만,

엄마에게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엄마다.


할머니는 내가 스물일곱 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나는 스물일곱 살,

그리고 엄마는 쉰둘이었다.


외할머니는 멀리 사셨다.

일 년에 한두 번 뵐까 말까였다.

엄마도 엄마가 자주 보고 싶었을 텐데

엄마도 엄마의 자식과 먹고사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가 엄마를 떠나보낸다는 건

도대체 어떤 슬픔이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건 검은 옷을 입고

말없이 앉아 있던 엄마의 뒷모습뿐이다.


많이 울지도 않았고, 많은 말을 하지도 않았다.

어리다면 어렸던 나는 ‘어른은 덜 슬픈가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어른이 되면 어른이 되어 자식을 낳고 키우면 슬픔이 덜 해 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엄마는… 울 틈조차 없었을 것이다.

엄마를 마음에 품고, 슬픔을 꾹꾹 눌러 삼키며

애써 괜찮은 척했을 것이다.

엄마에게도 지켜야 할 자식들이 있기에


이제 내가 마흔다섯.

나는 아직도 엄마옆에서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이렇게 지내는 것이 복인지 모르고 살아왔었다.

지금 아이를 낳고 키우며 엄마에 대한 감사함이 점점 더 커진다.


이제야

그때의 엄마 마음이 보인다.

그리고 자꾸만 생각이 난다.


엄마도

엄마가 그리운 날이 있겠지. 아무 말 없이

전화기를 바라보는 날이, 괜히 하늘 한번 올려다보는 날이.


그럴 때면

엄마는 마음속으로 할머니를 불러보는 걸까.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할머니… 보고 싶을 때 있어?”


잠깐을 나를 지긋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는 많은 생각들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지."


그 이야기를 듣는데 내 마음이 울컥했다.

엄마도 딸이었다.

내가 딸이 듯,

내 아이가 딸이 듯.


마주 앉아 밥을 먹고,

같이 산책을 하고,

엄마 손등에 앉은 주름 하나하나를

살피듯 바라보는 시간들.


나는 엄마의 눈빛에서 할머니를 본다.

엄마의 이제는 주름진 세월의 흔적이 있는

손을 잡으면 그 손을 통해

어느 먼 시절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는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엄마를 안아줄 차례다.

아이를 키우며 지치고 흔들리는 나를

언제나 품어주던 엄마처럼,

엄마도 기댈 수 있는 딸이 되어주고 싶다.


“엄마,

할머니가 그리운 날엔 내 손 잡아도 돼.”


내가 그런 것처럼

엄마도 누군가의 손이

간절히 필요한 날이 있을 테니까.


엄마의 그리움 앞에

나는 오늘도 조용히 손을 내민다.


그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어간다.

해가 쨍쨍 한 이 한여름에,

또 살아가야 할 우리의 날들을.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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