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결혼기념일에 이혼하기 13.
집을 나온 지도 두 달이 되어갔다. 그 사이 로펌에서는 사건 진행 내역을 수시로 이메일로 전달해 주었다. 수임료를 내고 담당 변호사가 지정되었다고 해서 그 담당 변호사가 직접 진행 사항과 전달하는 법원 공문의 의미, 앞으로의 절차 등에 관해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언제나 로펌 사무직원이 법원에서 내 앞으로 날아온 공문 등의 문서를 스캔해서 아무 설명도 없이 내 이메일 계정으로 보내주는 것이 전부였다. 이 공문이 무슨 내용이며,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하면 직접 변호사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봐야 했다. 그럼 정말이지 그 변호사는 단답형으로 대답을 하곤 했다. 그나마도 대체로 두루뭉술한 답변이었다. 예를 들면 '그래서 첫 조정 기일이 언제쯤 잡히나요'라고 질문하면 '조만간 열릴 겁니다' 뭐 이런 식이다. 정확한 날짜를 알려달라는 게 아니라 통상 첫 기일이 열리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질문이라는 것을 어린애도 알 수 있을 터인데, 명색이 담당 변호사라는 양반이 저렇게 성의 없는 대답을 내놓곤 했다. '조만간'이라니. 심지어 재산 분할 대상과 같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하고 민감한 질문을 할 때에도, '글쎄요, 해봐야죠' 이런 짜발량이 같은 대답을 할 뿐이었다. 나는 변호사와 통화를 할 때면 언제나 몹시도 마뜩잖음을 느꼈지만, 전화를 끊고 '쳇', '참나' 등의 감탄사를 내뱉는 정도로 불만을 해소하였다. 그건 내가 아량이 넓어서도 아니었고 불만을 잘 표출하지 못하는 성격이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당시 내 모든 불만과 불평의 대상은 '남편'이라는 존재 하나에만 오롯이 집중되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내 아이의 양육권까지 걸린 일생일대의 싸움을 하고 있는 판국이니, 다른 자잘한 싸움은 무시하거나 미뤄두자 생각했다. '이혼' 이외의 것들에 내 생각과 감정과 시간을 소모하는 일은 최대한 지양해야 했다.
그 사이 내 조정 신청서가 접수되고, 남편 측에 전달되고, 남편 명의 재산의 가압류 신청서가 접수되고, 이 또한 남편 측에 전달되었다는 등의 진행 내역을 로펌으로부터 매우 성실히 전달받았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와 두 달이 되도록 남편에게 아이를 보여주지 않고 있었어도, 법원을 통해 내 이혼 조건을 담은 조정 신청서가 전달되었을 때에도, 재산 가압류 통지가 날아갔을 때에도 남편은 나에게 한 번도,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남편과 일체의 대화나 접촉 없이도 이혼이라는 것이 착착 진행되어 감에 매우 흡족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로펌으로부터 남편 측에서 드디어 변호사를 선임했고, 조정 의사가 없으니 소송으로 전환해 달라는 요청서를 전달받았다. 나는 그날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당시 나는 육아휴직 후 회사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로 휴직 기간 동안 개편된 새로운 조직과 새로운 업무, 새로운 동료들에 열심히 적응함과 동시에 업무 인수인계를 받느라 매우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도 아직은 어색한 팀원들과 도란도란 점심을 먹고 따뜻하고 달달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사무실로 돌아와 커피의 맛과 향을 음미하며 아직 끝나지 않은 점심시간의 끝자락을 붙들고 여유롭게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 여유롭고, 나른하고, 향기롭고, 평화롭고, 심지어 육아에서 조차 벗어난, 모든 것을 다 갖춘 그 완벽한 순간에 마침 로펌으로부터 그러한 청천벽력과 같은 통지를 받은 것이었다. 해당 이메일을 열어본 순간 나는 내 몸속 피가 정확히 거꾸로 솟구침을 느꼈고, 순간적으로 시야가 흐릿해졌으며, 손과 발이 급격히 차가워지며 몸 전체의 모든 근육들이 한 번에 미세하게 떨렸다.
'너란 인간은... 정말이지... 답이 없구나?'
나는 당장이라도 사무실에서 뛰쳐나가 남편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나 그러한 분노도 잠시, 길면 몇 년까지도 걸릴 수 있으며 조정이혼과는 격이 다른, 소송이라는 진흙탕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때까지만 해도 흐릿하기만 했던 눈앞이 이내 캄캄해졌고, 곧 끝 모를 절망감이 내게 엄습해 왔다.
'내 인생이 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깔끔하게 이혼해서 성공한 사업가로, 씩씩한 싱글맘으로 살겠다는데, 그것만으로도 퍽이나 힘에 부칠텐데, 이혼마저 이렇게 어렵다니...'
조정이혼이라는 희망이 그대로 내 커피 향과 함께 훅 날아갔다.
귀여운 아기펭귄에게서 얻었던 용기도 패기도 남겨진 커피처럼 차게 식어버렸다.
그리고 며칠 후 법원으로부터 서류가 도착했다. 거기에는 딱 한 줄이 쓰여있었다.
이 한 문장은 읽는 순간 나로 하여금 두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두통을 불러일으켰다.
'조정을 하지 않는다.'
이 말인즉슨 남편은 조정 따위로 순순히 이혼과 이혼 조건에 합의할 마음이 없다는 뜻이었고,
그 말인즉슨 남편이 걸고넘어져 끝까지 지켜낼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이었고,
그 말인즉슨 소송까지 가서 나눌 재산까지는 없는 상태에서 그가 지켜낼 무언가가 결국 딸의 양육권이라는 뜻이었으며,
이 모든 '즉슨'을 종합해 보면 나는 앞으로 남편과 딸의 양육권을 놓고 지리하고 지난한 진흙탕 싸움을 벌여야만 하며,
아주 어쩌면, 내가 딸의 양육권을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혹시 아주 어쩌면, 내가 딸과 함께 살지 못하고 가끔씩 얼굴만 보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8개월을 배에 품고, 배를 찢어 낳고는 죽기 직전까지 갔다 살아나 또 8개월을 젖을 먹여 키우고, 1년 365일 중 예방 접종일을 제외한 360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360번 목욕을 시키며, 잦은 울음을 우는 아이임에도 그 울음이 몇 초를 넘기지 않도록 번개처럼 달려가 품어주고 달래 가며 정성을 다해 키운 내 아이였다. 기고, 걷고, 어설피 뛰기를 시작하기까지, 온 집안을 누비고 다니고 매일 놀이터에서 놀면서도 온몸에 생채기 하나 나지 않도록 살뜰히 보살핀 내 생때같은 아이였다. 밤마다 자장가를 불러주며, 알아듣든 그렇지 못하든 매일매일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 칭찬하고 축복기도를 하며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다 쏟은 내 영혼과도 같은 아이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이 아이가 나인지, 내가 이 아이인지 분간이 들지 않을 만큼 나 자신과 하나가 되어버린 그런 내 아이였다. 아니, 그 아이는 나였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 아이를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아이와 내가 떨어져 산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자꾸 한다.
남편이란 작자도, 변호사도, 법원도 다 엉뚱한 소리만 한다.
하나의 영혼과 하나의 몸을 어떻게 떨어뜨려 놓을 수 있다고, 그게 가능 키나 한 일이라고,
그 말도 안 되는 걸 행여 꿈이라도 꾸고 우스개로 가정이라도 할 수 있냐는 말이다.
가당치 않은 소리, 가당치도 않은 소리를 하는 무뢰배들.
모두 다 내 변호사보다도 못한 짜발량이들.
그렇게 이미 하나인 나와 내 아이가 분리되는 상상을 하던 내 정신은 서서히 분열해 갔다.
그렇게 조정이혼은 아기 펭귄의 고향보다 더 멀리 물 건너갔고,
그렇게 나는 확실히, 그리고 빠르게,
미쳐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