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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라잎 May 10. 2021

01. 양가감정

양가 감정의 발현 근거과 유익성에 관한 탐색적 고찰

"아우~~~~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어요!!"

18개월 된 딸아이가 요즘 이솝 우화 '양치기 소년'에 꽂혔다.

아이의 장난감 중 전자펜으로 동화책 표지를 찍으면 해당 동화가 재생되는 것이 있다.

아이가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처음 듣던 날이 기억난다. 한 철부지 아이의 장난스런 거짓말로 시작한 이야기는 결국 소년이 지키던 양들이 모두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파국을 맞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이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숨죽여 눈만 깜빡이며 듣고있다가, 결국 마을사람들이 양치기 소년이 또 거짓말을 하는줄 알고 늑대가 나타나도 도와주지 않아 늑대가 양들을 다 먹어버리는 엔딩을 듣고는 "으이이이이" 소리를 내며 무섭다고 내게 달려와 안겼다. 귀여운 인형이나 캐릭터 그림으로만 양을 접한 아이에게는 그토록 귀엽게 웃고있는 몽글몽글 털뭉치 양들이 떼죽음을 당한 이야기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법하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점철된 동화만 접해본 아이에게 이솝의 우화는 다소 매운맛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아마도 아이가 18개월 인생에 처음으로 접한 새드 엔딩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 충격적인 경험 후로는 그 전자펜으로 동작하는 책만 봐도 괜히 "으이이잉" 거리며 다소 과장한 무서움을 표현하기도 하고,

내가 "뭐가 무서워~ 그냥 이야기인데. 하나도 안무서운거야~"라고 태연한 반응을 보이면 그 때서야 안심한듯한 표정으로

"아우~~~~"

이렇게 늑대 울음소리를 따라하거나, 

"음메에에! 음메에에!" 

양들이 잡아먹힐 때 내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문제는 아이에게 양치기 소년 이야기란 너무나 무서우면서도 동시에 반대로 그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알고 나서 부터 괜히 그 전자펜 책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손가락으로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책을 가리키며 양 팔로 자기 몸통을 스스로 감싸안고 눈썹은 갈매기 모양을 한 채,

"엄마! 흐잉 히잉"

하며 가만 있는 책더러 무섭다는 시늉을 한다. 

그래서 내가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무서워? 그럼 다른거 들을까?"

하면 

"응!"

하며 결심한듯 책을 펼친다.

그리고는 아이가 스스로 전자펜을 들고 양치기 소년이 아닌 다른 책 표지를 찍으려고 하는데, 펜을 든 아이의 손은 무슨 일인지 자꾸 양치기 소년  책 표지 쪽으로 끌어당겨진다. 아이는 고민되는듯 손을 애써 다른 책 표지 쪽으로 끌고 가보지만, 손은 이내 다른 책을 찍지 못하고 다시 양치기 소년 책 근처로 돌아온다.

아이의 귀여운 방황을 끝내 주고자 나는

"우리 양치기 소년 들을까?"

그러면 아이는 또 기다렸다는듯 고개를 세차게 휘저으며

"흐이흐잉"

소리를 내며 또 갈매기 눈썹을 한다.

무섭지만 궁금하고 두렵지만 가까이 가고 싶은,

아이에게서 발견되는 이 적나라한 양가 감정.

모순된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방황하는 귀여운 아이를 관찰하며 문득 나 역시도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이러한 양가 감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 느끼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바로 "아, 너무 힘들어서 좀 벗어나고 싶다"와 "아, 정말이지 세상 끝까지 행복하다"라는 당최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감정이다.


아이를 키우며 이전에는 느껴본적 없던 저세상의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고되고 힘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 잠시나마 이 육아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이내 아이의 얼굴과 웃음과 그 사랑스러운 몸짓에, 순간순간 알아차리는 놀라운 성장에 다시 끝을 알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이런 양 극단의 감정이 어느 정도의 넉넉한 시간차도 허락하지않은 채 교차로 찾아올 때면 나는 지친 몸보다 괴로운 마음에 더 힘들었다. 사랑한다며, 끝 없이 행복하다며, 어떻게 동시에 이렇게 천사같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키우는 삶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잠시나마 들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이런 감정적 모순으로 인한 괴로움에, 끝내 부모로서의 자격까지 논하며 점차 분열해가는 나의 초라한 자아를 발견하기도 한다. 과연 나는 엄마로서의 자격이 있는가? 어떤 심리적, 정서적 결절이 있는 소시오패스와 비슷한 류가 아닐까? 아이를 키우기에 도덕적, 감정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탓 아닐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모순된 감정의 양립은 실 생활속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공포영화가 너무 무서워서 보기 두려운 한 편 너무 궁금해서 대 낮에 커튼을 열어둔 채 보는 것(무섭지만 보고 싶은)

이사 또는 전학을 갈때, 또는 이직을 할 때 새로운 곳에 대한 두근거리는 기대감과 함께 두려움을 함께 느끼는 것(두렵지만 기대되는),

과거의 행복한 순간을 회상할 때 드는 ‘행복감’ 이면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에 대한 ‘상실감’을 동시에 느끼는 ‘향수’(행복하면서 씁쓸한)

이들은 대표적인 양가감정의 사례로, 이와 같이 양가감정은 매우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이다. 

학문적으로도 ‘양가 감정(Ambivalent Emotions)’은 실제로 오랜 기간 심리학의 연구 주제이어왔으며, 최근까지도 매우 다양한 감정과 상황에 대해 꽤나 넓은 스펙트럼의 실험으로 진행되고 있다. 관련하여 많은 연구들을 살펴본 나는 단순히 ‘인간 심리의 모순성’으로 보여지는 이 감정이 실제로 꽤나 여러 방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Kristjánsson (2010)은 역사적, 철학적 인물들이 겪는 도덕적 양가감정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양가감정이 비록 삶에 불편을 초래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균형 잡힌 도덕적 판단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고,

Zimmerman (2016)은 양가감정 즉,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통해 양가감정은 불편함과 결정의 어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깊이 있는 사고와 창의적인 문제 해결을 촉진한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양가감정은 거절이나 실패와 같은 상황에서 정서적 완충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Cecchini (2021)은 연구 참가자들에게 도덕적 또는 개인적 딜레마를 제시하여 상반된 감정을 느끼도록 하는 실험을 통해 그들의 의사 결정 과정과 감정 반응을 분석하였고, 결과적으로 양가 감정이란 단순한 감정적 혼란이 아니라 복잡한 문제에서의 더 나은 판단과 성찰을 촉진하는 역할을 함을 증명했다.

Reich (2022)와 Yale 연구진은 7개의 실험을 통해 양가감정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위험한 선택을 앞두고 긍정적/부정적 결과를 모두 생각할 때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이 더 높았다. 한 실험의 참가자들이 꿈의 직장을 제안받았을 때 추가 휴가일을 협상할 의향이 있는지 조사했는데, 양가감정을 경험한 그룹이 더 높은 비율로 협상을 시도했다. 다시 말해 꿈의 직장이라 할지라도 부푼 기대 뿐 아니라 이직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을 함께 갖는 사람들이 처우 협상에 더 적극적이었다는 것이다.

Pillaud (2018)은 그들의 연구에서 논란이 되는 문제에서 양가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해당 주제에 대해 깊이 숙고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사회적 유능함(Social Utility) 측면에서 더 높게 평가받음을 밝혔다. 또한 양가감정을 경험하는 학습자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신념을 수정하는 데 더 유연하여, 결과적으로 더 나은 학습 성과를 보일 뿐 아니라 양가감정을 통해 자기 인식과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다양한 연구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양가 감정은 논리적 모순에 의해 발생하는 단순한 감정적 혼란이 아닌, 도덕적, 개인적 딜레마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러한 양가 감정을 느낄 때, 잠시나마 심리적 불편함을 경험할 수는 있지만 문제 상황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사고와 성찰, 창의적이고 도덕적으로 균형잡힌 판단과 성찰을 할 수 있다. 나아가 두려운 상황에 행동하도록 해주고, 사회적으로 유능하고,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다. 결국 양가 감정이란 다방면에서 인간에게 유용한 기제임이 확실해 보인다.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나갈 것이고,

부모들은 아이가 주는 사랑과 행복으로 때로는 벗어나고 싶을 만큼 고단한 부모의 삶을 퍽 잘 헤쳐나갈 것이다.





[참고문헌]

Decchini, D. (2021) Experiencing the Conflict: The Rationality of Ambivalence. The Journal of Value Inquiry, 58, 1–12.

Kristjánsson, K. (2010) The Trouble with Ambivalent Emotions. Philosophy, 85(334), 485-510.

Pillaud, V. et al. (2018) The Social Utility of Ambivalence: Being Ambivalent on Controversial Issues Is Recognized as Competence. Frontiers in Psychology, 9.

Reich T. (2022) Can Ambivalence Motivate Us to Act? Yale Insight, March 01.

Zimmerman, E. (2016) Is Ambivalence Healthy? Researchers Have Mixed Feelings.  Stanford Business, November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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