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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라잎 May 14. 2021

03. 영감의 원천

아이를 키운다는 건 03화

흔히 아이를 낳고 기르면 삶이 바뀐다고들 한다. 

물론 나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던 한 인간이 나의 존재와 도움을 전적으로 필요로 하는 '자녀'라는 존재를 인생에 포함시키게 되면 생활 전반이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시간, 체력, 돈과 같이 인간이 가진 극히 유한하고 귀중한 핵심 자원을 한 대상에게 온전히 '갈아 넣는다'는 결심과 실행으로 아이 부모의 삶은 크게 바뀐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 나의 핵심 자원의 투입 비율이나 이동같은 물리적, 직접적 변화 이외에도 보다 고차원적이고 정신적인 변화가 발생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분명 '모성애'와는 다른 영역에 속한 그것을 나는 감히 '영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퇴근과 주말과 여름 휴가만 기다리며 소위 '편하고 좋은 회사'에 다니는 삶에 만족했던 내가 '좋은 회사를 다니는 엄마'가 아닌, '좋은 회사를 세우고 사회에 기여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져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창업을 준비한다.

주말이면 최대한 늦게까지 잠옷차림으로 뒹굴거리는 것을 한 주의 보상으로 여겼던 내가 '항상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 엄마'가 되고 싶어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아이보다 한참 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상태로 아이가 몇 시에 잠에서 깨든 활기찬 모습으로 아이의 아침을 맞으려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

일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넷플릭스 시리즈와 영화를 보는데 아낌없이 썼던 내가 '틈만 나면 독서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 돌연 독서광을 자처하며 살고 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무려 약 25년 전 영화인 잭 니콜슨 주연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사랑에 빠진 잭 니콜슨이 상대인 헬렌 헌트에게 하는 말: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정말이지 아이는 내가 매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매일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나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미래를 꿈 꿀 것인지,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영감을 불어넣는다. 


며칠 전 신문에 실린 작고한 소설가 이청준에 대한 칼럼을 보았다. 육십 대의 나이에 늦둥이 초등학생 외동딸을 두고 있었던 그는 딸아이에게 세상 사는 이치와 옳고 그름을 판소리에 담긴 우화를 통해 가르치기 위해 판소리 동화 '심청가'를 집필했다. 판소리 심청가에는 여러 판본이 있지만 대부분 심청을 전생에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지상에 떨어진 선녀로 묘사하는데, 이청준은 신재효본을 차용해 심청을 연인을 찾으러 지상에 내려온 선녀로 해석했다 한다. 칼럼니스트는 '심청을 비극적 운명에 시달리는 여인이 아닌, 자기 결정권을 행사한 주체적 여인으로 그리려고 한 것은 긴 인생을 헤쳐 나가야 할 딸에게 희망적 서사를 들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로 글을 마무리했다. 내가 말하는 '아이가 주는 영감'이 예술에 적용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대표적인 사례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도 2015년 그의 딸 맥스의 출생을 기념하며 딸에게 쓴 편지에 "네가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란다"며 그와 그의 부인이 보유한 페이스북 지분의 99%를 기부할 것이라 선언한 바 있다.


이렇듯 아이로부터 받는 영감은 나라는 사람과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꾸고,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돌아보는 마음의 눈을 뜨게 해준다.


그러고 보면 내가 키우는 아이가 나를 자라게 한다. 



아이를 키운다는건,

인생 최고의 뮤즈(Muse)를 만나고 

그 뮤즈로부터 끊임없이 영감을 받아 이전에는 꿈 꿔보지 못했던 새로운 삶을 사는 기회를 얻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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