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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Dec 23. 2022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회사생활

이 맛에 회사 다닌다

요즘 다루고 싶었던 맛집 여행 글 연재를 시작했더니 지인들이 식당 광고하는 블로그 하냐고 묻는다.

이러다 맛 칼럼니스트 되겠다고 ㅎㅎㅎ


그러게. 요청도 하지 않고 돈도 안 받는데 자발적으로 광고를 하고 있는 셈인데, 뭐 어쩌겠나.


내가 가서 잘 먹고 탈 없었고, 추억을 남기고 다른 분들에게도 사는 재미 하나 더 드리니 그냥 좋다. 맛집에 대한 정보는 나누면 더 좋은 것 같다.


맛집 관련 글을 이제 3개 올렸는데, 월드컵 관련 글보다 큰 호응이 있어 놀랐다.


앞으로도 하나하나 남겨두고 좋아하는 허영만 작가님의 백반기행처럼 스스로에게는 추억이, 다른 분들에게는 맛집과 여행 가이드가 되었으면 한다.




요즘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가 인기인 것 같다.


재벌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루고, 현실과 빗대고, 동시에 연기자 분들의 명연기와 대사가 빛 나서 그래 보인다.


그런데, 사실 회사를 오래 다니며, 이것 저것 직접 보고 겪고, 듣다 보면 미생이나 재벌집 막내아들과 같은 영화나 드라마들이 재미있긴 한데, 본방사수하거나 다시 보고 그러진 않는다.


왜냐하면 현실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영화와 드라마가 창작이지만, 현실의 재미있는 면을 담기도 한다.


한창 인기를 끌던 개콘 (개그콘서트)가 오랜 방영 후 접었을 때 이런 말이 있었다.


“이래서 개콘이 망했다.”


희극인, 코미디언 분들이 재미있는 콩트나 해학을 보여주어 재미를 느끼는데, 현실이 그보다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막장이다.”


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 임원이 잘렸다.


제대로 한 것도 없고, 실적도 없는데 이빨과 아부로 저렇게 버티고 임원이 된 것이 신기했다.


회사 돈으로 신나게 비즈니스 클래스 비행기 타고 출장 다니며 법카를 남발하고 다녔다.


법카로 다니는 단골 술집에서 나올 때 안주 하나 더 포장해달라고 해서 챙겨 나오는 걸 보며 기겁했다. 일을 저렇게 열심히 하고 챙겼으면 사장되었을 건데


직원들 앞에서는 위세를 내세우며 갑질을 일삼더니 사장님 앞에서는 쥐새끼가 따로 없었다. 굽신굽신.


100 미터 앞에 사장님이 나타나면 90도로 인사하고 뛰어갔다. 사장님이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사장님과 임원들이 같이 있는 회식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다들 얼마나 손발이 오그라들었을까.


아마 속으로 이렇게들 생각했을 거다.


‘우와 이 xx 정말 대단하다. 도저히 못 당하겠다. 저 정도까지는 못하겠다.’


그런데 사장님은 그걸 또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날 진짜 생각해주는 건 당신밖에 없다. “


하며, 실적이 없어도 삽질해도 챙겨주고 자르지 않는 걸 보면 신기했다. 냉정하기로는 일 티어 (1 tier, 최고 선봉)인 분이.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 후배였다. 이놈의 학연 ㅎ


사장님이 바뀌면서 집으로 갔다.

사필귀정이라고나 할까. 아니, 권선징악이 더 어울리는 말일까 ㅎㅎ


이 분의 이야기도 더 하면 재미있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 진짜 할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 분이 잘리기 전에 뽑은 두 사람 이야기다.


A는 이 임원과 판박이었다. 그럴듯한 표정과 자세 그리고 어투로 입만 열면 구라.

어쩌면 자신과 같은 사람을 저렇게 뽑았는지도 신기하다.


나이 많다는 것 밖에 내세울 게 없었는지 나이를 내세우며 ‘내가 위다’ 라고 하고 다녔다.


실력은 보잘 것 없었지만 윗사람들 비위 맞추는 데에는 특급 전문가였다. 낮에 일할 때는 거의 말이 없었는데 저녁 회식 자리만 있으면 완전히 휘젓고 다녔다. 별의별 종류의 술을 미친 듯이 말아서 먹고 먹이는, 한마디로 멀찌감치 피해 있어야 하는 위험인물이었다.


법카 쓰면서 먹는 술과 밥이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물론 1차로 집에 가는 일은 없었고, 2차 3차 다 집에 택시 태워 보내고 끝까지 먹을 수 있는 데까지 먹고 집에 갔다.


좋아하는 바 (Bar)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법카로 양주를 시켜 마시고 킵 (keep) 해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와서 먹는 건 당연지사.


특이하게도, 자신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는 갈 때 꼭 편의점에서 빵을 사서 주면서,


“집에 가서 가족들하고 먹어”

하고 말하곤 했다.


다음날 꼭 ‘잘 들어갔어?’ 하면서,


그 몇천 원어치 빵 사준 걸 얘기하며 본인이 챙겨줬다고 생색을 내곤 했다. 누가 그런 것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솔직히 대단한 것도 아니면서 생색까지 내니 웃겼다.


당연히 사람들과는 멀어지고, 다들 같이 일도 회식도 하기 싫어하자 임원이 면담을 했다.


사람들과 트러블 일으키지 말고 잘 지내라는 말에,


“저 왕따 아닙니다.”


라고 했다고 한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나 싶다.




B는 수더분하면서 사람들과 잘 지냈다.


대화도 편하게 잘하고,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그 임원이 자신이 뽑았다는 것을 강조하며 거의 몸종처럼 굴렸다.


연말에 갑자기 출장을 가야 한다고, 파트너와 약속도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비행기 표부터 예약하고 일단 가자고 하며 이 친구를 데려갔다.


일 년 내내 없던 실적이 연말에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나. 당장 위기를 모면해서 1년만 더 버티자는 전략으로 일단 해외 출장을 가서 뭐라도 만들고 사인해 오고 보자는 바쁜 척 수작.


혼자 가면 되는데 외롭기도 하고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어서 심심했는지 이 친구를 가방 모찌로 달고 갔다. 현지에 가서도 약속이 잡히지 않자 이 친구에게 온갖 짜증을 내며 무리한 요구를 했다고 한다.


더 대박은 미팅이 잡히지 않고, 본사에서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자 밤 술자리에서 어떻게라도 비벼 보려고 급히 복귀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니 넌 여기서 대기하라고 놔두고 왔다.


연말에 가족과 여행계획까지 잡아둔 상태에서 모든 걸 취소하고 위약금까지 물어야 하는 상황.

당연히 그런 걸 고려할리도 없고 미안하다는 말도 한마디 없다. 그렇게 연말 연초를 해외에서 망치고 복귀해서도 별 말이 없었다.


외국 친구들과 일을 할 때는 본인의 능력을 멋지게 보여줬다.


A 같은 친구는 사내 회의 때는 청룡언월도를 들고 미친 듯이 칼춤을 추며 입에서 불을 뿜던 사람들이, 외국인 파트너들 앞에서는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Hi" "How are you?" "Nice to meet you."

이후엔 말이 없어진다. 수십 년 영어 공부를 하고 토익 시험에 스피킹 시험 성적까지 내고 회사에 입사하는데도 왜 그럴까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막히면 그제야 B가 나섰다. 상대방 입장이 뭔지 확인하고, 우리 입장을 분명히 전달하고, 논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차분히 근거와 사례와 함께 설명했다.


그제야 우리 쪽 사람들도 이제야 이야기가 조금 되어가는군 하며 안심해한다. 그렇게 회의가 마무리되고 서류를 정리하며 수고했다고 말한다. 누구나 그 친구가 제일 고생했고 기여한 것을 안다.


하지만 상대 평가가 연봉 인상 폭으로 연결되니, 분명히 자신보다 능력도 높고 기여도도 높지만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 파트너와 회의 때는 말이 없던 A는 적극적으로 뒷다마를 하고 다닌다. 듣기 무척 불편했지만 정작 본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누가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대우받으며 오래 다닐까?


당연히 능력 있고 기여도가 높은 B 일까?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답을 알고 있을 거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이 이런 대사를 한 적이 있다.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긴 한가?”


물론 나는 우리나라가 정의롭고 정의로운 사회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왜 부패지수가 그렇게 높고, 온갖 부정부패와 불평등이 끊이지 않을까?


B는 퇴사했고, A는 ‘내가 말이야’ 하며 잘 다니고 있다.


이러니 영화와 코미디가 현실을 따라올 수 없는 거다.


B는 열심히 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고, 옆을 보니 역겹고, 능력이 있어 다른 곳으로 미련 없이 가버린다. 다행히 연봉을 높여서 가기도 한다.


하지만, A는 갈 데가 많지 않다. 이미 이곳에서도 실력이 없고, 이상한 짓을 많이 해서 평판이 안 좋은데, 다른 곳에선 이미 검증이 끝난 사람이다. 술자리에서 무릎 꿇고 울면서 자기 좀 살려달라고, 딸린 처자식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끝까지 버틴다.


안타깝지만, B 같은 친구는 이렇게까지 아부도, 애걸복걸도 하지 못한다. 인성도 그렇지만 굳이 저렇게까지. 능력 있고 사람이 괜찮으니 불러주고 뽑아주는 곳이 있어 밥 먹고 사는 데에는 걱정이 없으니,


“더러워서 저렇게는 못하겠네요.”


하고 그동안 고마웠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조용히 사라진다.


A가 잘릴 위기를 여러 번 넘기고 (벌써 잘려도 이상하지 않을 그 친구가) 자신이 한 일을 무용담이라고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또 칼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보면 웃기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인가?


그러면 A 같은 사람들만 남은 회사는 어떻게 될까?


HR 인사팀에서 그런 부분은 가려내야 한다고? 만일 HR도 A같은 사람들이 판치고 있다면?


일은 서로 하지 않으려고 하고 미루고, 책임은 지지 않고 넘기려고 매일 회의만 하는 회사. 결정적일 때 도망가는 먹튀들이 판치는 회사.


그 난장판까지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상상에 맡기겠다.


내가 몸 담고 있는 회사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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