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아이러니
E는 약간 모자란 사람이었다.
스스로는 나름 자부심이 있었지만, 대체적인 평가는 업무 능력이 다소 부족하다고들 말했다.
뭔가 열심히 하는데 해놓은 결과를 보면 아쉬운 그런 사람.
그래서, E는 애초에 팀장감이 아니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낙하산 임원이 오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런 사람들은 신기한 공통점이 있는데, 너무 많이 알고 잘하면 본인을 가르치려 들고,
나중엔 아예 본인의 자리까지 위협하는 것을 잘 알아서 애초에 뛰어나고 잘난 친구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에 약간 모자라면서 조직 내에서도 그렇게 크게 인정 받지 못한 사람을 눈여겨 본다.
그리고 테스트를 해보고 자신의 말을 잘 듣고, 배신하지 않을지 한번 본다.
그것을 통과하면 수족으로 부리고 쓴다.
정치권에서도 그런 일들이 자주 보이는데, 보통 보면 그런 사람들의 물의를 일으킨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긴다. 하지만, 부족한 자신을 인정해 준 사람에 대한 충성심은 강해서,
잘 배신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팀장이 된 E는, 낙하산 임원이 내부 네트워크가 약한 점을 잘 보완해 주었다.
그리고 업계의 기본 지식과 회사의 history를 모르는 점도 성심성의껏 알려드렸다.
그것이 부족한 자신을 pick 해서 팀장의 자리에 오르게 해 준 임원에 대한 보은이라 생각하는지 참 열심히 했다.
보통 낙하산 임원은 뭘 잘 모르고,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고, 실수도 잦다.
그럴 때 E가 그건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이런 의미이다 하며 수습을 하곤 했다.
그리고, 낙하산 임원이 사내에서 뭘 해보자고 하면 다들 말만 좋게 하고 비협조적인 경우가 많은데,
E가 사내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좀 봐줘', '좀 도와줘, 부탁 좀 할께' 하면서 밥도 사 먹이고,
팀에 피자도 돌려가며 협력을 이끌어 냈다.
나도 그렇게 협업을 제안해 오면 도와주고, 아는 부분은 잘 알려줬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이게 결국 저 낙하산 임원을 도와주는 건데 하며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다.
그렇게 밤낮이고 일하고, 타 팀 협조를 이끌어냈던 E.
그렇게 혼자서도 잘 구르는 E를 뒤에서 잘 조정한 낙하산 임원은 그런 면에서는 탁월해 보였다.
역시 회사 임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심지어 타 조직과 협업해서 얻은 결과물을 잘 포장해서 그 낙하산 임원은 한 단계 더 승진했다.
다른 요인까지는 모르겠지만, 성과 평가를 조작을 했든 어쨌든 그게 사장님과 윗선에 먹혔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거다.
그날 자기 일처럼 기쁘게 박수치며 웃던 E를 기억한다.
하지만, 낙하산 담당 임원은 호들갑 그만 떨라고 자중시켰다.
과연, 업계 경험은 없고, 전문 지식은 없어도,
임원 달고 거기서 승진까지 한 낙하산 임원은 달랐다.
보통 보면 승진해서 턱이 하늘 끝으로 올라간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나중엔,
"저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서 오래 못해먹겠는걸."
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일찍, 어떨 땐 6개월 만에 집에 가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하지만 이 낙하산 임원은 이럴 때 시기, 질투가 날아드니 되려 겸손해지고 몸을 낮춰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크게 좋아하지도, 환호하거나 파티를 열지도 않았다.
마치 좋지 않은 일이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는 것처럼, 조촐한 점심을 먹으며,
"다 여러분들 덕입니다."
라는, 립 서비스를 남기는 것으로 끝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E가 좋아한 이유는 단지 자신이 모시는 임원이 승진한 것을 축하하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부족해도 자리 욕심, 돈 욕심 등은 기본 욕구인 경우가 많아 끝없이 위를 쳐다보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고 이제 그만해야지 하는 말은 그냥 하는 소리 아니면, 상대방을 안심시키려는 나 욕심 없어요 하는 위장술인 경우가 많다.
E도 담당 임원이 승진했으니 본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거라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낙하산 임원은 이미 이 회사에 적응이 된 상태이고, E 등이 떠먹여 준 엑기스를 통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었다.
즉, E가 예전만큼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여기서 기대의 불일치가 발생한다.
낙하산 임원은 E가 필요한 정도가 약해지고, E의 요구치는 높아지고.
즉, 딜이 성립이 안될 가능성이 높아진 거다.
더군다나, 낙하산 임원은 E를 쓰면서 E의 능력의 한계를 절감했다.
팀장을 달아줬다고 약간 모자란 사람이 high performance를 내는 사람으로 갑자기 변할 수는 없다.
그저 부족한 능력을 충성심으로, 몸으로 극복해 내고 있었던 거다.
안타깝지만, 이런 일은 우리 역사에서도 많다.
처음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매일같이 얼굴 보고, 밥 먹고, 밤 새고 일도 하고, 위기를 돌파했던 사이가,
변화된 환경에선 권력 다툼이랄지, 변화된 상황에서 요구되는 다른 능력으로 틀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1년의 유예기간을 줬던 낙하산 임원은, 한 단계 위로의 도약을 꿈꾸던 E를 무참히 버렸다.
때마침, 승진하며 책임의 범위가 넓어진 낙하산 임원의 조직 내에서 실수가 있었고, 그 책임을 E에게 돌리며,
자신은 면피하고 E는 자리에서 내려보내는 일타이득의 신공을 선보였다.
욕을 하면서도 감탄이 나왔다.
E는 그렇게 팀장에서 허망하게 내려와서는, 반 폐인이 되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사람이 운 좋게 팀장이 되었는데, 결국 무능함이 드러나서 팀장에서 내려온 것으로 정리되어 버린 인간.
본인이 아무리 재기하려 발버둥 쳐봤자, 개미지옥마냥 거기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밑에 있던, 젊은 친구가 '참신한 팀장'이라는 기치 아래, 자신의 팀장이 되었을 때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낙하산 담당 임원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어쩌면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면서 화를 낼 수도 있었는데, E는 다 자신의 잘못이라며 자신이 제대로 모시지 못해서 이렇게 된 것 같다. 다 받아들인다 라는 말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탁이라며 본사에서 본인이 부하직원으로 데리고 있었던, 지금은 자신의 팀장이 된 사람 밑에서, 지시받으며 일하기 어려우니 해외 지사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몇 년을 버티며 받은 해외 수당으로, 빚까지 땡겨 살던 집을 팔고 강남에 집을 샀다.
휴가 때 본인도 이제 강남에 입성했다고 환하게 웃었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그걸 잘 이겨내고, 저렇게 긍정적으로 뭔가 시도해 봐야 살아가는 거지.'
그렇게 해외 지사에서 잘 놀고 돌아왔을 때 강남 집값은 크게 올라 있었다.
우습게도 젊은 팀장은 일하고 시달리느라 바빠서 집을 사지 못하고, 전세에 계속 살면서 전셋값 올려주며 허덕거렸다.
과연 누구의 삶이 더 행복한 삶일까?
이대로 그 젊은 팀장이 내려오면 그 친구는 정년까지 어떻게 이 회사에서 버틸까?
이 날개 잃은 천사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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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autoplus 최진영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