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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Nov 18. 2022

바람이 불어오는 곳

김광석 님 그리고 J rabbit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해외 출장을 참 많이 다니던 시기가 있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계속 다니다 보니 런던 가는 게 무슨 인천 가는 것 마냥 자주 다녔다.


회사에서 해외여행 보내주니 좋겠네 할 수 있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너무 많이 하면 안 좋을 수 있다.


정장 입고 서류와 노트북을 챙겨서 일로 가는 해외 출장은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가는 해외 관광 여행과는 달랐다.

비행기도 어쩌다 한번 타야 설레고 신나지 너무 자주 타면 힘들다.


그 시절 우연히 이 노래를 만났다.


영국인, 독일인 등 다국적 파트너들과 만나서 협의를 하고 일의 진전을 모두 사인한 문서로써 혹은 협의된 내용이라는 이메일이라도 증거가 있어야 해서 부담이 컸다.


런던까지 가는 비행기에서도 가서 협의할 내용을 다시 한번 보고, 협의 시나리오를 그려보고, 상대방이 납득할만한 논리를 생각해볼 정도였다.


그러다 머리가 아프면 영화를 보곤 했는데, 영화도 보기 귀찮고 자려고 기내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찾아보곤 했다.


명상 음악도 있고 잔잔한 음악 (내 기억엔, 어른들을 위한 자장가라는 것도 있었던 것 같다.)을 찾아서 들으며 잠을 청하곤 했다.


이 노래, 저 노래를 들어보다 이 노래를 만나게 되었는데 너무나 편안했다. 그땐 김광석 님의 곡인 줄 몰랐다. 여성 가수 분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J rabbit 님 같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하는 첫 소절만 듣는데도,


언젠가 느꼈던 시원한 바람 (breeze)이  기억나고, 마치 평온한 언덕 위에서 유유히 흐르는 강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고음과 매운 맛으로 귀를 사로잡아야 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런 것이 없는데도 잔잔하게 흘러가는 노래를 계속 듣게 되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사랑해,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슬퍼’ 그런 노래를 들으며 느끼는 처음 만남의 설렘, 깊어가는 사랑에 푹 빠짐, 헤어질 때의 상실감이 아닌,


마치 흘러가는 강을 보듯 편안하게 들으며 시원한 바람을 상상하고 relax (풀어짐) 되어 잠들곤 했다.


https://youtu.be/RRvo6A11TMA




너의 목소리가 그리워도

뒤돌아 볼 수는 없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이 노래는 재미있게도, 마음의 평안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옛 생각을, 옛 추억을 흐뭇하게 떠올려 보게도 했다.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라는 대목에서,


옛사랑에게 눈물 젖은 편지를 쓰는 게 아니라, 그때의 행복하고 평화롭던 추억을 떠올리고 웃음 짓게 했다.


‘맞아, 그땐 그랬지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며 눈 내리는 날 추운 줄도 모르고 서로 해맑게 웃으며 눈 뭉치를 던지며 즐거워하던 날이 떠올랐다.


어느새 나이를 먹고, 건조한 사회생활에 치어,

‘잘 지냈니?’로 시작하는, 그 친구에게 부칠 수 없는 편지에 담담하면서도 편안하게 추억을 담아 쓰지는 못했지만,

그런 기분이라도 느끼게 해 줘서 감사했다.


너의 목소리가 그리워도,

굳이 옛날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을 해보지 않아도, 지금 떠올리며 웃음 지을 수 있게, 그 시절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마울 뿐이고,


그때 함께 손 잡고 걸으며 ‘아, 시원하다’하며 느꼈던 바람과 평온한 감정을,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며 떠올릴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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