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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이리엔 Oct 25. 2024

어서와, 이런 학원은 처음이지 (feat.히잡걸)

동네 프랑스어 학원의 반전 

프랑스에 온지 어언 6개월차.

온라인 강의나 숏츠로만 깨작거리던 프랑스어 학습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남편동료의 와이프이자, 이제는 내 친구가 된 프랑스인 친구가 데려가 준 동네 지역 어학원에 등록했기 때문이다. 


처음 방문했을때부터 일반적으로 도시에 있는 어학원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이민자들의 쉼터 같은 느낌이랄까. 이민자 어린이들이 모여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들의 엄마들도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단, 히잡을 쓰지 않은 사람은 나와 '프랑스인 교사'들 뿐이었다. 



상황이야 어떻든, 몇개월을 찾아 헤맸던 어학원을 드디어 찾았다. 심지어 한 학기에 50유로라니, 이런 저렴한 학원은 처음이다. 손짓발짓을 더해가며, 힘들게 등록을 마치고 9월이 되어 드디어 학원이 개강했다. 



프랑스에 온 이후로, 정기적인 일정이 잡힌 것은 처음인지라 많이 떨렸다. 

30분 일찍 도착한 교실에 앉아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어떤 선생님을 만날까? 

같은 반에는 비슷한 나이대 친구들이 있을까? 

수업 끝나면 커피한잔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길까?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교실의 모습이 펼쳐졌다. 

어랏, 나 이런 환경은 처음인데. 





학원에서 우리반의 학생은 총 11명이다. 

누가봐도 프랑스인 같아 보이는 매우 선량한 선생님 Jane을 제외하고 말이다. 선생님은 매번 수업마다 심플한 프렌치시크 패션을 제대로 보여주는 중이다. 볼때마다 '와 멋지다'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자, 나머지 우리반의 학생들은 11명 모두 이민자이다. 

3명은 알제리 출신, 7명은 모로코 출신, 1명은 한국 출신, 나다. 


모두 형형색색의 히잡을 두르고 있어서, 나는 남편에게 그녀들을 '히잡걸'이라고 지칭한다. 


연령대도 참 다양하다. 아이가 최소 1명씩은 있고, 우리 엄마뻘쯤 되어 보이는 학생도 있다. 

심지어 다들 프랑스어를 잘 (말)한다. 자기소개는 물론, 일반적인 대화까지도 무리없어 보인다. 분명 왕초보(A1) 수업이라고 했는데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알제리와 모로코 모두 이전 프랑스 식민지령이었던 곳이라, 아마도 어느정도 말하기는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그 외에도 아랍어를 공통으로 사용해서, 그들끼리는 아랍어로 대화하기도 했다. 



첫 수업때는 왜 프랑스어를 배우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학생들이 동일한 답변을 내놓았다.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워오기 때문에, 본인들도 아이와 제대로 이야기하기 위해서 배운다는 것이다. 


아.. 한국의 문맹률이 굉장히 낮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심지어 한국은 이민자도 거의 없는 국가인지라, 내가 한국에 사는 동안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다. 내가 만나본 외국인이라곤, 한국이 좋아서 유학하고, 직장을 찾아 일하고 있는 회사동료들이었으니. 



이때부터였을까. 왠지 모르게 어깨에 잔뜩 들어갔던 힘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를 거의 못하는 나를 신기하게 구경하는 히잡걸들 사이에서, 잔뜩 긴장되었던 몸이 조금 풀렸다. 


그렇게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첫 수업이 끝났다. 




그 다음 시간에는 프랑스어 인사말을 배우며, 본인 국가의 언어로 인사말을 소개했다. 물론, 사람은 11명이었지만 총 2가지 언어만 오갈 뿐이었다. 아랍어, 그리고 한국어. 


그들은 우리에겐 무한도전에서 윤상&정준하 콜라보 곡으로 익숙한 '아살람 알라이쿰'을 소개했다. 

줄여서는 그냥 '살람~'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나는 인사말을 빠르게 노트에 적고 조용히 연습했다. 수업이 끝날 때, 그들의 언어로 인사하고 싶었다. 

내가 혼자 연습하는 것을 본 히잡걸 중 왕언니(ㅎㅎ)가 나를 가르키며 막 웃기 시작했다. 말은 못 알아들어도, 왠지 "쟤 아랍어 연습해ㅎㅎ"라는 이야기 같았다. 나는 머쓱하게 웃었고, 다같이 소리내어 웃었다. 



그때, 어깨에 아직 남아있던 작은 긴장감까지 사르르 녹아버린 것 같았다. 

그 날 학원이 끝나고 우리는 "살람~"이라고 인사하고 헤어졌고, 나이가 비슷한 한명의 친구와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며,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짧은 프랑스어로 서로 통성명을 했다. 







사실 아직 나의 프랑스어로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없다. 

그저 수업시간에 만나면 잘 지냈니? 오늘은 어때? 정도 물어보는 정도. 돌아오는 답을 정확히 이해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일주일에 4시간 같이 수업을 듣고, 서로 모르는 문제를 손짓발짓으로 도와주며 조금은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돌아와서 남편에게 내 평생 히잡걸들에게 둘러쌓여 프랑스어를 배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마도 본인 평생 왠 한국인이랑 같이 프랑스어를 공부할 줄은 몰랐다고 했을 것이다. 



서로에게 생경하지만,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는 다수의 그들이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줘서 감사하다. 나에게는 그들이 도움이 되지만, 그들에게 나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굳이 나를 챙겨주는 마음이 참 감사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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