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오기 전부터 가장 고대했고, 와서도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것은 바로 깻잎 기르기이다. 한국에서도 워낙 깻잎을 좋아했기에 날씨가 풀리기도 전인 5월부터 깻잎을 기르기 시작했다. 한번 탄력이 붙으면 마구 자라나서, 먹는 속도가 자라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렇게 깻잎을 기른지 약 4개월이 흘렀고, 결과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처음부터 날파리가 많았던 흙에서 계속해서 벌레들이 늘어났다. 어느 순간부터 깻잎들이 성장을 멈추고, 말라가기도 했다.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 천연오일도 사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3개월의 전쟁 끝에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결정했다. 흙을 다 갈아엎고 새로운 흙으로 '건강한 모종'만 10개 이내로 남겨보는 것이다.
흙을 갈아엎으며 벌레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는 화분들은 몇개 집 안으로 들이기도 했다. 해가 잘 드는 2층으로 올려, 실내에서만 키웠더니 그 모종들은 쑥쑥 자라서 이파리를 한 10장은 따먹은 것 같다. 테라스에 있는 깻잎모종들은 흙을 옮기는 작업 후 이틀 뒤, 반 정도가 모두 말라 죽었다. 아마도 흙에 보존을 위해 넣어놓은 가스나 합성비료가 덜 빠졌었나보다.
이렇게 몇줄기 간신히 살려놓은 귀한 깻잎을 프랑스인 친구에게 분양했다.
깻잎에게 이런 감정을?
한식대첩을 통해 우리 집에서 깻잎을 처음 맛 본 친구부부는 그때부터 '코리안 허브'를 분양해달라고 했다. 그 당시엔 모종이 훨씬 많았기에, 빨리 나눠줬으면 더 많은 모종이 살았을수도 있다. 친구의 집에는 작은 화단이 있고, 예쁜 꽃나무 몇개와 작은 무화과 나무도 열매가 잘 맺히는 것을 보니, 깻잎이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을것 같다. 남편과 나는 깻잎 3뿌리를 그 집으로 보내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무성한 깻잎대를 보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 어차피 그들은 다 먹지 못할거라며, 우리가 가서 한웅큼씩 따오자고 히히덕거렸다.
어느 평일 저녁, 불판을 가져가 친구네 집 마당에서 '코리안 바베큐'를 즐기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몇개 남지 않은 깻잎을 보며, 그 날을 분양의 날로 정했다. 작은 화분들로 꾸려진 간이화단에서 이 모종들을 계속 끌어안고 있어봐야, 그냥 이파리가 더이상 크지 않는 채로 피 말리는 시간만 늘어날 것 같았다. 몇달간 공을 들였더니 남아있는 깻잎이 6뿌리는 되는데도, 차마 나눠줄 깻잎줄기를 고르기가 너무 어려웠다.
튼튼한 줄기를 주자니, 남은 깻잎들이 내 텃밭에서 곧 죽어버릴 것 같았고.
연약한 줄기를 주자니, 튼튼한 모종들도 결국 내 텃밭에서 서서히 말라가지 않을까 싶었다.
그냥 욕심이 많았다는 뜻이다.
깻잎 앞에 앉아서 한참을 이 줄기를 들춰봤다, 저 줄기를 들춰봤다 30분은 넘게 쭈그려 있었다. 결론은 튼튼한 깻잎들을 골라 주기로 했고, 빠르게 작은 플라스틱 통에 옮겨담았다. 가서 꼭 뿌리를 잘 내리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그렇게 깻잎들은 프랑스인에게 분양되었다. 아직 잘 살아남았는지 물어보지 못했는데, 왠지 물어보기가 두렵다. 새로운 흙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냥 다 죽었다면 조금 섭섭할 것 같아서이다.
나도 참... 반려견이나 반려묘도 아니고, 깻잎 몇뿌리에 참 유난이라는 생각을 했다.
진짜 깻잎들이 소중해서라기보단, 씨앗을 발아시킬 때부터 매일매일 정성을 퍼부은 날들이 떠올라서 그런 듯 하다. 왠지 그 시간들을 남에게 분양해버린 기분이랄까.
근데 사실 언제 깻잎이 손바닥만해져서 따먹을 수 있는지,호시탐탐 지켜보던 사람이 할 생각은 아닌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