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시장의 주인공은 과연?
인생 처음으로 겪어본 남프랑스의 여름, 뜨거운 햇살과 여름의 온갖 것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여름아 가지 말라고 매일 외쳐댔다. 누군가 들어주기는커녕, 가을이 정말 빠르게 와버렸다.
뜨거운 여름 탓인지 해가 잘 들지 않도록 서늘하게 만들어진 집은 시원하다 못해 발이 시릴 정도로 추워졌다. 나뭇가지가 휘날리는 남프랑스의 가을바람은 집 안에서 보기만 해도 서늘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참 감사한 것이 있다면, 여름보다 살짝 순해진 따가운 햇볕과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가을 먹거리이다.
거의 2주간 시장에 들르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시장에 들어서니 뭔가 많이 달라졌다! 여름보다 많이 진해진 색감과, 상큼한 맛보다는 묵직한 맛을 상상하게 되는 모습이다.
왠지 프랑스 동네 시장은 더더욱 제철재료들이 활발히 교체되는 것 같다. 큰 계절의 변화를 떠나, 일주일마다 조금씩 다른 과일이나 채소가 주인공이 되는 진귀한 장면을 볼 수 있다. 시장만 슬쩍 둘러봐도 지금 계절을 바로 알아챌 수 있달까.
여름 내내 토마토, 복숭아, 자두, 푸룬으로 가득 찼던 시장의 메인 매대가 호박으로 가득 차있었다. 울퉁불퉁 못난이 호박들과 형형색색 호박들이 잔뜩 쌓여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와! 호박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았던가?
올해 여름 삐죽빼죽 못생겼던 토마토를 맛봤을 때 기억이 나서, 새로운 식재료를 건드려보고 싶은 욕심이 든다. 단호박처럼 찜을 해볼까, 푹 끓여서 호박수프를 해볼까 이래저래 고민만 하다가 그냥 돌아섰다. 호박 요리라곤 호박죽밖에 못 먹어본 나로서는 왠지 함부로 장바구니에 넣기 힘든 식재료라 아쉽기만 하다.
길거리 꽃집에서도 호박을 판매한다. 이 정도면 호박들이 장식용이라고 봐야 하는 건가 싶다. 호박을 이렇게나 많이 본 것도 처음인데, 꽃집에서도, 초콜릿 집에서도 호박을 팔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생각해 보니 풍미 좋은 버터, 우유가 가득한 프랑스에서 뭘 걱정하는 건지. 호박의 철이 지나가기 전에 그냥 호박스프라도 해봐야겠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뒤에 다시 시장에 들렀다. 호박 뒤에 빼꼼 자리를 잡고 있던 버섯들이 주인공이 되었다. 올봄부터 여름까지 '양송이버섯'말고 다른 종류의 버섯은 전혀 보지 못했었다. 미식의 나라에서 버섯을 정말 양송이만 먹는 건지 아주 물음표가 가득했었는데, 결국 제철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샤브샤브에 느타리버섯도 쭉쭉 찢어 넣고 싶고, 삼겹살을 구울 때면 새송이버섯도 곁들이고 싶고, 찌개에 표고버섯도 숭덩숭덩 넣고 싶었던 6개월이었다.
가을 제철을 맞아 시장에 나온 버섯들의 상태를 보니, 왜 6개월 동안 코빼기도 안 보였는지 알겠다. 누가 봐도 하우스재배를 하는 것처럼 멀끔하고 깨끗한 양송이버섯을 제외하고는 모두 '흙투성이' 상태이다. 버섯의 종류도 한국과는 사뭇 달라서, 챗 GPT에 종류를 물어보니 역시나 새로운 버섯들이다.
송이와도 닮았고, 새송이 같기도 한 버섯은 이탈리아에서 많이 쓰는 포치니라고 한다. 검은색의 느타리모양 버섯은 능이버섯인가 싶어서 향을 맡아보니 영 다른 향이다. 흡사 독버섯 같아 보이는 노란색의 버섯은 과일향이 나는 버섯이라고 한다.
가을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은 각종 버섯들. 시장에서 만나니 먼 친척을 만난 수준의 반가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려 온 주인공들이지만 아직 장바구니에 담지 못했다. 한국식 요리로는 안될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조리하는게 좋은지 연구부터 해봐야겠다!
그 외에도, 시장의 과일구역에는 단감과 홍시가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다. 여름 끝물에 나오던 작은 무화과의 2-3배는 되어 보이는 블랙 무화과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큰 알밤도 과일자리에서 존재감을 뽐낸다.
가을이 오니 먹고 싶어서 며칠 동안 머리를 맴돌던 단감과 알밤을 담았다. 단감은 한국에서 먹던 아삭하고 달달한 맛일까? 알밤은 포슬포슬할까, 단단할까?
시장을 둘러보니 여름이 좋으니 제발 가을은 오지 말라고 했던 나에게 한소리 하고 싶어 진다!
이렇게나 풍요로운 가을을 왜 구박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