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와인 도장 깨기 = 평생 걸림
프랑스에 오기 전부터 너무나도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다. 프랑스는 와인 종류가 매우 많아서, 자국 와인 만으로도 모든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다른 나라의 와인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 와인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생가하기까지 하면, 그럴 만도 하다.
내가 겪은 프랑스인은 아직 매우 극소수이고, 몇몇의 의견을 일반화할 수 없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느낀 것은 ‘프랑스인들은 거의 프랑스 와인만 마신다’.
우선, 와인지식은 적지만 애정은 가득한 한 사람으로서 프랑스와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지만, 가장 인상적인 점만 한 가지 꼽아보겠다.
프랑스 와인은 가격과 맛의 선택지가 정말 넓다.
그 말인즉슨,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언제나 와인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라는 뜻이다. 가성비 개념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기준으로 5유로(7,500원)부터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 천지삐까리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이들이 프랑스와인만 마셔도 되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프랑스와인은 크게 3가지 산지로 나뉜다. 그 유명한 부르고뉴(Bourgogne), 보르도(Bordeaux), 그리고 론(Rhône) 지역이다.
각 지역별로 기후적 특징과 재배하는 포도품종이 크게 달라, 각각 다른 특성의 와인들이 생산된다. 또한, 해당지역에 거주한다면 리테일규모가 크지 않은 소규모 와이너리의 와인들까지 마트, 시장 등에서 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형체인점인 까르푸를 가더라도 와인코너에 가면, 해당지역의 와인이 약 50-70% 정도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타 지역 와인들이 골고루 분배되어 있다. 대형체인 유통업 매장이어도 지역와인을 별도 큐레이션을 한다는 뜻이다.
크게는 3개의 산지, 각각의 산지 산하에 크고 작은 세부지역과 와이너리들까지 합하면 실로 엄청난 규모의 옵션이 있다는 것이다. 와인을 좋아만 하지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는 나는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 마트에서 와인을 구매하는 것이 즐거움이자 곤욕이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 작은 지역들이 많았는데, 그 지역의 와인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는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또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게 된다. 결국 유명한 와이너리나 AOP*로 관리되는 지역의 와인들은 기본가격대가 높지 않나?
AOP(Appellation d'Origine Protégée)
유럽 연합(EU)의 원산지 보호 명칭 제도로, 특정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 및 식품의 품질과 특성을 보장하고 보호하기 위해 지정된 인증. 샴페인(Champagne), 보르도(Bordeaux), 부르고뉴(Bourgogne) 와인 등이 AOP로 지정되어 있으며, 각 지역의 특성과 기후, 포도 품종이 와인에 반영.
맞다.
내가 살고 있는 론 지역을 예로 들면, 교황의 와인으로 유명한 샤토네프-뒤-파프(Châteauneuf-du-Pape)는 1병 가격이 최소 20유로(35,000원)부터 시작하여, 상한가는 정해진 것이 없다.
그렇지만 프랑스에 깔리고 깔린 것이 와이너리 아니던가?
평범한 프랑스인들은 매일 혹은 자주 마시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들은 그 지역에 붙어있지만, 샤토네프-뒤-파프 AOP로 지정되지 않은 주변 지역을 찾는다. 거의 같은 기후환경, 떼루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와인이지만, 가격은 25%-50% 정도 수준인 지역와인들 말이다.
심지어 본인이 선호하는 지역이나 구체적인 와이너리가 생기면, 그 지역의 와인생산자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예약 없이도 방문할 수 있는 와이너리 내 샵도 있고, 예약 후 테이스팅을 할 수 있는 샵도 있다. 내 입맛에 맞는 와인이 있으면, 유통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생산자에게서 구매해서 박스로 들여다 놓고 먹는다.
뭐 하나를 해도 자부심에 스크래치를 내지 않고 싶어 하는 프랑스인 특성을 생각해 보면, 작은 와이너리라도 이상한 퀄리티는 아닐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현지에 와서 느껴보니 실제로 체감했다.
평범한 프랑스인들 입장에선 와인의 맛, 가격의 선택지가 엄청나게 많아서 굳이 프랑스 외 국가의 와인을 탐구할 필요가 없다.
사실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호주 등 다른 국가의 와인을 구하기가 어렵다 ^^;;;
대형마트 기준으로 프랑스 와인이 99.5% 정도 점유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나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와인의 강한 맛도 선호하기 때문에, 마트에 이탈리아 와인이 보이면 몇 병씩 쟁여놓는다. 얼마 전 스페인에 가서도 저렴한 와인으로 5병이나 구매해 왔다.
프랑스 와인이 모든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 듯한 이들이 조금 갑갑하면서도, 이 환경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마지막으로 나만의 결론.
프랑스 사람들은 정말 프랑스 와인만 먹나요?
YES! 그러나, 타 국가 와인을 무시하는 것보다는, 자국 와인만 먹기에도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