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by 한잔잔


구름과 나는 하늘의 간격을 가진다. 하늘 하나가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 그만치 멀고 그만치 가깝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려다보는 것보다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했으므로 자연스럽게 개미보다는 구름과 친하게 지냈다. 비스킷을 등에 업고 걸어 다니는 개미 무리 떼를 관찰하는 것보다는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이름을 붙여 주기를 좋아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고 움직였다. 나는 그를 쫓아 뛰기도 했고 멈춰서 보내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일방적이고, 아주 영원을 함께 할 사이. 절대로 손을 마주 잡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어김없이 내일의 나도 너를 바라볼 것이라고 약속할 수 있는 그런 사이였다.


그를 떠올리다 상상에 목소리를 붙여준 것은 중학생 때 일이었다. 나는 첫 번째 분단의 둘째 줄 왼쪽 자리에 앉았다. 구석진 자리였고, 왼쪽에는 사물함과 창문이 있던 명당이었다. 창틀에 가로막힌 햇빛이 네모나게 얼굴 위로 떨어지면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하늘을 봤다. 그러면 거기에 그가 있었다. 도무지 목을 틔워 불러볼 자신은 없어서 속으로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넌 어떤 목소리를 가졌을까. 나는 내 멋대로 너를 그렸다. 넌 나와 비슷한 나이일 것 같아. 그게 아니면 내 눈꺼풀 위를 간지럽히고 도망갈 리가 없잖아. 장난꾸러기일 것 같아. 포근한 목소리와 발랄한 구두를 신었을 것 같아. 나는 상상을 구체화했다. 구름은 그렇게 사람이 되었다. 그려내고 보니 나와 닮았지만 다르게 성장해 간 아이 하나가 있었다. 내가 되고 싶었던 아이. 그게 구름이었다.


첫 구름은 완벽했다. 그 아이에게는 아픈 가정사가 있었고, 그렇지만 지금은 고요한 일상 속에 홀로 남겨졌으며, 그 애는 점차 조력자를 얻게 되었다. 차분한 구름에게는 좋은 친구도 있었다. 그래서 구름은 나와 다르게 상처를 딛고 여름의 바람을 시원하게 마주하는 어른이 되었다. 소설로 치자면 아주 꽉 닫혀서 공기 한 톨도 숨어있지 못하는 해피엔딩이었다. 완벽한 삶이었다.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은 딱히 그리지 않았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그 삶도 완벽할 거라고 생각했다. 흠집 하나 없이. 그 아이는, 그 구름은 완벽했으니까.


그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아이였지만 누구보다 완벽해진 그 구름을. 감히 상상하자면 내가 되고 싶었던 그 아이를. 그러면 나도 정말 구름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자꾸 문단마다 손가락이 덜컥 걸려댔다. 철컥이는 자물쇠를 짝이 맞지 않는 열쇠로 들쑤시는 것마냥 자꾸만 덜커덕 멈춰댔다. 나는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그 완벽한 삶을 도무지 쓸 수가 없었다.


왜였을까. 시간은 그 와중에도 흘러가고 나는 어느덧 어른의 경계를 걸터앉고 있었다. 되돌아볼 수 있는 나이였다. 나의 어린 시절들을 돌아보며 마음을 뜯어볼 수 있는 나이. 마냥 완벽한 삶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이쯤이다. 나의 구름은 완벽해서 존재할 수 없는 삶이었다는 걸 그때야 깨달았다. 비로소 내가 어른이 된 후에. 어린 머리로는 도무지 그려지지 않던 그 완벽한 삶이, 진짜로 그릴 수 없는 허상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두 번째 구름은 아프다. 이 구름도 행복했고, 그래서 웃었던 과거가 있었고, 어쩌다 보니 어른으로 흘러왔지만 딱히 쨍쨍한 삶은 아니다. 인생에 먹구름이 자주 꼈고, 눈앞에는 안개가 자주 들이닥쳤다. 그렇게 지키고 싶어 했던 구름을 버린 구름이었다. 내가 되고 싶어 했던 구름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변한 구름이었다. 나와 얼추 비슷하게 커버린 나이의 구름을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젠 더 이상 너를 만나지 않을 수가 없다고, 그렇게 누군가가 내게 소리치는 듯한 환상이 지속됐다.


오늘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을 이제 그려야 하니까. 온통 엉망인 이 글 위를 가로지르는 너를 내 언어로 담아야 하니까. 이제 그만 나와. 나랑 이야기해. 눈 감으면 네가 내 코 앞에 다가와 입꼬리에 우물이 파이는 웃음을 짓고 있는 것만 같은데. 눈을 뜨면 저 멀리 멀어져서는 희뿌옇게 불어오는 회색 연기 같았다.


네 이야기를 다 쓰고 나면 어떻게 될까? 나는 이게 참 궁금해. 네가 사라질지 여전히 장난스럽게 내 주위를 맴돌지 궁금해. 여전히 흰 구름 뒤에 숨어서 나를 내려다볼 건지도.


그러니까 쓸게.

우리 이제 손 좀 맞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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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